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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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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우리는 산책 하러 호텔에 간다 ‘중문관광단지(산책로)’

[마을]우리는 산책 하러 호텔에 간다 ‘중문관광단지(산책로)’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9.03.13

제주도에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미 오래 전 정착해 있던 지인이 좋은 산책로가 있다며 데려간 곳은 서귀포 중문관광단지 내의 호텔 하얏트 리젠시 제주였다. 1985년 개관해 건물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5성급의 위용을 드러내는 호텔 앞에 서자 촌스럽게도, 쫄고 말았다. 투숙객이 아닌데 들어가도 되는지 머뭇거리는 내게 지인은 "산책로만 조용히 구경하면 된다"며 웃었다. 호텔 입구 옆으로 개방돼있는 길을 따라 걸어 내려가니 잘 가꾸어진 정원 앞으로 서귀포 바다가 햇빛에 반짝이고 있었다.
'아, 내가 제주도에 있구나!'
유명 관광지가 아닌 호텔 한복판에 서서 이런 느낌을 받다니 아이러니하게 보이겠지만, 그 정원이 자리잡은 곳의 풍광 자체가 팔 할의 역할을 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다.
중문색달해변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멀리 보이는 주상절리의 웅장한 절벽들이 경외심 마저 들게 한다. 그 명당의 가운데에 관리 잘 된 조경수와 풍경을 압도하지 않는 선에서 조화롭게 놓여있는 조형물, 걷기 좋게 나무로 짜인 길 등이 산책의 맛을 더한다.
올레길 8코스가 지나는 길목에서 서귀포 바다를 앞마당으로 꿰찬 호텔들이 대부분 훌륭한 정원을 가지고 있다. 하얏트 호텔 산책로 옆으로는 신라호텔 산책로가 나 있다. 숨비정원이라 불리는 이곳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영화 <쉬리>의 마지막 촬영 장소인 일명 '쉬리벤치'가 있어서다. 앉아서 색달해변을 관망할 수 있는 일출 일몰 명소로, 봄이 되면 주변에 유채꽃이 만발한다. 이밖에 토끼와 다람쥐 등 동물들을 볼 수 있는 자연학습체험장과 작은 폭포가 흐르는 연못이 있는 등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역시 중문에 있는 씨에스호텔은 제주의 전통미를 살린 리조트로, 초가집 컨셉트의 단독 객실들이 독특한 멋을 더한다. 하얏트 정원이 바다가 탁 트이게 잘 보이도록 꾸며졌다면, 높은 건물이 없는 씨에스의 정원은 조경수와 초가지붕이 꽉 차게 어우러져 좀 더 아기자기하다.
정원이 끝나는 호텔 측면의 문을 열고 나가도 산책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느낌이다. 부영호텔 정원을 끼고 대포주상절리로 가는 올레길이 잘 조성돼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 마을의 액운을 막으려고 돌을 쌓아 세웠다는 방사탑과 같은 조형물로 꾸민 공원과 키 큰 야자들이 죽 늘어서는 구간이 있어 걷기에 심심하지 않다.
이 공간들은 개방돼 있지만 사실상 각 호텔의 투숙객들을 위해 마련된 곳이다.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의 조용한 산책을 권한다. 하지만 호텔 입장에서도 큰 손해는 아닐 것이라 믿는다. 산책로에 반해 언젠가 투숙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