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테마체험여행

테마체험여행

[드라이브]5.16도로-2

[드라이브]5.16도로-2

by 김동일 2008.07.31

5.16도로는 기공된 지 1년 7개월여 만인 1963년 10월 11일 개통식을 가졌다. 도로 포장은 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였고 문제는 역시 재정이었다. 중간에 계획이 바뀌어 도로 포장폭이 넓어지면서 도로가 완전 포장되기까지에는 1966년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개통식은 역사적인 인파가 모인 가운데 흥분 속에서 대대적으로 치러졌다.
개통식은 제주시와 서귀포 두 군데에서 개최됐다. 김영관 도지사는 제주시 행사 중간에 서귀포로 달려가 행사를 치렀으며, 행사가 끝난 다음에는 5.16도로의 중간에서 양쪽 주민들이 만나 얼싸안고 노래를 부르며 막걸리 잔치판이 벌어졌다. 서귀포에서는 5.16도로 개통을 기념하여 극장에서는 무료입장을 시켰고 술집에서는 가격 할인이 벌어지는 등 이날 하루 제주도는 열광의 도가니였다.

5.16도로를 따라서 제주시청, 세무서, 법원이 세워졌었고, 제주대학, 산업정보대학, 제주여중고, 중앙여고, 서귀포산업고, 그리고 여러 초등학교들이 5.16도로의 젖줄을 물고 도열해 있고, 제주의료원, 산천단, 성판악 휴게소, 왕벚나무 자생지, 한란 자생지, 돈내코,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주의 문화와 역사가 숨어있는 곳이 5.16도로이다.
5.16도로는 성판악을 기점으로 제주시 방면으로는 중앙로로 이어져 탑동 해안가까지 달려 나가며 제주시를 이등분하면서 관통하고 서귀포 방면으로는 급한 경사로 이뤄져 구불구불거리며 서귀포 시내로 뛰어든다. 5.16도로는 제주도를 좌우로 이등분하는 선이며, 산북과 산남을 이어주는 동맥이 되었고, 막혔던 핏줄이 5.16도로로 혈액이 순환되면서 수천 년 묵은 제주의 껍질을 벗겨내려는 혁명의 기운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지도자들의 순간의 판단이 국민의 평생을 좌우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만약 그 때에 5.16도로 건설이라는 결단이 내려지지 않았다면, 그 후의 환경단체들의 발호를 보아하건데 우리는 지금 5.16도로를 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5.16도로는 그 당시로서는 혁명적 발상이었고 과업이었다. 그 과감한 발상에 걸맞게 5.16도로는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5.16도로라는 이름만큼 이 도로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5.16도로에는 그 구불구불한 길바닥에, 그 길가의 풀 한 포기에조차 선대들이 흘렸던 땀과 눈물이 배어있다. 5.16도로는 불가능에 도전하던 우리의 긍지이고 그 명칭조차도 우리가 기억해야 우리의 역사이다. 정권의 코드가 바뀔 때마다 건물을 헐고 이름을 바꾸는 버릇은 얼마나 우매한 짓이던가. 이것은 정권을 잡자마자 코드가 다르다는 이유로 세계문화유산이던 바미안 석굴에 대포질을 해대던 아프칸의 탈레반과 다를 바가 없다.

한라산을 넘어가는 산허리 부근 도로에는 숲터널이 있어서 5.16도로는 더욱 아름답다. 5.16도로가 있어서 한라산은 더욱 아름답고, 제주도가 아름다운 것은 한라산이 있어서이다. 5.16도로가 있어 제주가 더욱 아름답고 제주가 더욱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