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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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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내 귀는 소라껍질, 먼 바다소리를 듣는다...

[박물관]내 귀는 소라껍질, 먼 바다소리를 듣는다...

by 제주 교차로 2010.07.29

'조가비 박물관'
조가비는 조개껍데기를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다. 조개껍데기 박물관보다는 조가비 박물관 쪽이 듣기에도 그렇고 입에 담기에도 훨씬 편안하다. 뿐만 아니라 무언가 비밀이 숨어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보티첼리의 유명한 그림 ‘비너스의 탄생’에서 비너스는 대왕조개를 타고 뭍으로 올라온다. 흔히 여성성을 상징하는 은어로 조개가 쓰인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일단 은밀한 느낌을 주는 게 사실이기는 하다.
조가비 박물관은 여느 사설 박물관과 마찬가지로 규모면에서는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내실을 기한 전시장은 잠시 시간을 낸다고 해도 그렇게 아깝지는 않을 것이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세우고 박물관을 바라보면 수많은 조개껍데기(조가비)로 벽면을 장식해 놓았다. 어떻게 보면 전복 껍데기 같기도 한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가비의 안쪽 면에 마치 종기라도 돋은 듯이 올록볼록한 돌기가 돋아 있다. 무심히 지나치기 쉬운데 그것이 바로 진주다. 한 개의 조개껍데기에 적게는 서너 개에서 많게는 예닐곱 개까지 돌기가 돋아 있다. 비록 자라다가 만 것이라고는 해도 최후의 한 알까지 박박 긁어 낸다면 꽤 돈이 될 것도 같은데, 아깝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저렇게 많은 진주조개를 어디에서 구한 것일까?
박물관 내부는 생각보다 협소하기는 하지만 꽤 많은 종류의 조개껍데기를 전시하고 있다. 제주도 근해에서 채집한 소라껍데기부터 비너스가 타고 왔다는 대왕조개에 이르기까지 다양성면에서는 충분히 박물관이라고 할만 하다.
한두 번 들어서는 외울 것 같지도 않은 길고 어려운 이름까지 용케 찾아내어 이름표를 붙여 뒀다. 모양과 색상이 제각각인 이 조개들은 과연 먹고 남은 것일까? 한때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조개구이집에서도 꽤 많은 분량의 조개껍데기가 배출됐을 것인데, 외국에서는 저렇게 예쁘게 생긴 조개도 식용으로 잡히는 것일까?
터무니없는 상상 끝에 웃음을 물고 살피며 다니자니 전시장 모퉁이에 기념품 매장이 마련돼 있다. 주력 상품이 진주다. 이제야 진주조개껍데기로 벽면을 장식할 수 있었던 까닭을 알 것 같다. 아마도 추측하건데 이 박물관의 소유주는 진주조개를 양식하고 있는 모양이다.
보석(寶石)이라는 것은 ‘보배로운 돌’이라는 말일 터인데 조개 속에서 자라난 경질의 결정체도 보석에 속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진주는 조개의 내부에서 생겨난 결석쯤 되는 모양이다.
판매원의 설명을 들어가며 천차만별인 가격을 가늠해보지만 도대체 가격이 어떤 방식으로 매겨지는 건지 알 수가 없다. 색깔에 따라서, 굵기에 따라서 값이 다른 것 같다가도 어떤 것은 꽤 굵은데도 불구하고 진주라는 이름값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름값이라고 말해놓고 보니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느낌이다. 값으로 치자면 진주조개의 몇 천배는 족히 될 인간으로서 그 값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이겠는가.
결국 알이 굵은데도 제 값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멀쩡하게 생겨 먹었으면서도 사람값을 못한다는 이야기와 같은 말일 것이다. 진주가 제값을 받기 위해 목걸이로, 반지로 각종 장신구로 가공이 되듯이 사람 역시 제 값을 받기 위해서는 갖가지 세공과정을 거쳐 새로 태어나는 수밖에는 없을 듯하다.
조가비 박물관은 제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 중의 하나인 구좌읍에서 성산읍을 연결하는 해안도로에 면해 있다. 이름이 이름이니만큼 바닷가에 입지를 정하는 것이 자연스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간에 쫓기지 않고 인파에 떠밀리지 않고 여유있게 둘러볼만한 하다.
‘내 귀는 소라 껍질, 먼 바다 소리를 듣는다’던 장콕도의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 주소: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12-87
☎ 064-784-8862
▲ 입장료: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