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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기원전 1세기의 제주를 만나다

[유적지]기원전 1세기의 제주를 만나다

by 원지애 기자 2012.12.10

돌로 흙을 파고 , 나무를 자르고 돌화살촉으로 멧돼지를 잡는다 . 나무를 돌려 불씨를 만들고 토기에 곡식도 저장한다 . 애니메이션이나 최근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 정글의 법칙 ’ 에서나 볼 법한 원시적인 장면들이 2,000 년 전 제주의 모습이라면 어떨까 . 기원전 1 세기 제주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는 곳 , 바로 삼양동선사유적지 이다 .

삼양동 1973 년 고인돌 3 기가 보고됐고 , 1986 년 제주대학교박물관에서 지표조사를 통해 원삼국시대에 속하는 적갈색토기와 돌도끼 등의 유물이 수집되면서 그 존재가 확인됐다 . 그 후 1996 년 토지구회정리사업 과정에서 다량의 토기와 함께 청동기시대 집터가 발견됐다 .

이에 대해 1997 년부터 1999 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제주대학교박물관에 의해 발굴조사가 진행됐는데 , 그 결과 제주 삼양동 유적은 청동기시대 후기의 송국리형움집터 ( 내부에 타원형 구덩이를 조성하고 그 양쪽에 기둥구멍을 설치한 집터 ) 를 바탕으로 축조된 제주지역 최대 규모의 마을유적임이 알려지게 됐다 .

삼양동 유적은 기원전 1 세기를 전후한 대단위 마을 복합유적이었다 . 이마을 안에는 크고 작은 움집 , 창고 , 저장공 , 야외토기요지 , 조리장소 , 노지 , 마을 공간을 구획한 경계석축과 배수로 , 그리고 폐기장 , 패총 , 지석묘 등으로 구성됐다 .

흙 속에 묻혀져 있는 제주 찾기
삼양동 유적에서는 총 236 기의 주거지가 확인됐고 , 이들 대형 주거지에서는 대형그릇 , 한옥 , 동검 , 각종 옥과 구슬 , 탄화곡물들이 출토됐다 .

삼양동 유적은 한 가운데 집회용노지를 중심으로 작은 광장이 배치되어있고 , 그 주위로 원형주거지 다수가 동그랗게 들어서 있는 단위주거군의 정형성을 보이고 있다 . 마을 유적 전체를 보면 중심 주거구역 안에서만 중요유물이 출토됐는 , 이러한 공간배치와 출토유물의 성격을 미뤄볼 때 신분에 따른 계급사회를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는 곧 탐라국 형성기 사회모습을 보여주는 마을 유적이라 할 수 있겠다 .

제주 삼양동 유적 내에는 내 · 외부전시관을 비롯해 움집 14 동이 복원돼있다 . 내부전시관에는 삼양동 유적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과 설명들이 전시돼 그 당시 생활사를 엿볼 수 있었다 .
외부 전시관에는 원형주거지 4 동 , 굴립주건물지 2 동과 다수의 기둥 구명들이 발굴당시 모습으로 유리바닥 아래 보존돼 있었는데 , 발아래 2,000 년전 제주의 모습이 생생이 그려지는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 야외에는 대형움집 1 동 , 방형움집 1 동을 비롯해 총 14 동의 움집이 복원돼 과거 움집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돼 있다 . 지금의 주거문화와 비교한다면 너무 협소한 규모의 공간이지만 당시의 움집이 있었기에 지금의 주택과 아파트가 존재하는게 아닐까 싶었다 .

14 동의 움집과 함께 건너편 아파트가 한 시야에 들어온다 . 과거와 현재의 만남이 아닐까 싶다 .
16 년전 유물을 발굴만 하고 토지구획정리 사업을 그대로 진행해 건물을 올렸다면 지금의 삼양동 유적지는 없었을 것이다 .
흩어져있던 파편을 찾아 하나의 토기를 완성하는 것처럼 , 묻혀진 제주의 문화유산들도 찾아서 하나의 제주역사를 보존하는 해야 한다 . 그리고 일반인들이 제주역사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가질 수 있도록 다양한 홍보와 교육이 이뤄져 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