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테마체험여행

테마체험여행

[마을]동백꽃만 보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마을 ‘위미리’

[마을]동백꽃만 보고 지나치기엔 아까운 마을 ‘위미리’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9.02.28

"여기 살면 제주도 다른 데 못 살 걸?"
지난 여름, 서귀포시 남원읍 위미리로의 이사가 결정됐을 때 주위 삼춘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다. '위미에 살면 이제 제주도 내 다른 동네로 가지 않게 될 것'이라는 예언(?). 제주의 지도상 남쪽 중앙에 위치해 가장 따뜻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한여름이라 그 장점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았다. 게다가 나는 친정이 있는 조천에서 멀리 떨어진 서귀포로 가는 것이 못내 아쉬웠으나, 남편은 그 예언이 이루어지기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우리에게 이 마을이 제대로 빛을 발하기 시작한 건 겨울에 접어들면서부터다. 물론 이번 겨울이 유난히 따뜻하기는 했지만, 늦가을부터 추위를 타는 내가 한겨울 점퍼를 꺼내어 입은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무엇보다 12월부터 2월까지의 난방비가 10만 원이 채 되지 않은 게 기록적이었다.
날씨가 좋으니 자연히 산책하는 날이 많아졌다. 초등학교와 드문드문 가게들이 있을 뿐, 대부분이 귤 밭 딸린 낮은 집으로 옹기종기 채워진 조용한 마을. 시끌벅적한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데, 겨울만큼은 예외다. 한겨울에 빨갛게 꽃을 피우는 동백군락지가 관광 필수코스가 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이곳 주민이 되기 전 동백꽃 덕분에 위미리를 알게 됐고, 관광객처럼 구경도 왔었다. 요즘은 SNS에 올라오는 사진들로 입소문을 타서인지 주차장이 미어질 정도로 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대부분이 동백군락지에서 사진만 찍고 다른 유명 관광지로 이동하겠지만, 여유가 있다면 이 마을을 둘러보는 것을 추천한다. 바다를 따라서 올레길 5코스(남원포구~쇠소깍다리)를 걸어도 좋고, 마을 쪽으로 올라가면 아기자기한 동네구경을 할 수 있다. 소박한 간판을 내걸은 작은 식당과 미용실, 정육점, 생필품 몇 가지를 진열해놓은 오래된 상회 등이 특별한 멋 없이 정겹다. 입장료를 내지 않아도 돌담 밖으로 동백꽃을 보여주는 집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귤 수확 직전에는 집집마다 주황물결이 꽃나무 못지않게 장관이다.
이 소소한 풍경 가운데 ‘핫’한 카페들도 섞여 있으니 지나치게 심심한 산책은 아닐 것이다.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로 알려진 ‘서연의집’, 찰떡구이가 맛있다는 ‘와랑와랑’ 등은 이미 명소가 된 지 오래고, 최근에 생긴 카페 EPL은 약 200평의 정원과 위미항이 보이는 루프탑까지 갖춘 큰 규모로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는다면 한겨울의 산책도 부담스럽지 않은 마을. 천천히 걸을수록 오래 담고 싶은 풍경들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