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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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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제주도의 봄, 꽃구경도 좋지만…'제주4.3평화공원'

[테마여행]제주도의 봄, 꽃구경도 좋지만…'제주4.3평화공원'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9.04.17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는 시(<황무지>, T.S 엘리엇)의 문구가 회자되는 계절이 왔다. 시의 본뜻과는 별개로 이 말은 71년 전 제주의 4월을 떠올리게 한다.
올해 4월 3일에도 제주 4.3평화공원에서 희생자 추념식이 열렸다.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 관덕정 3.1절 기념집회에 참석한 시위군중에게 경찰이 총을 쏜 것이 도화선이 되어, 다음해 4월 3일 남한의 단독선거를 저지하려는 남로당(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 사태를 시작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 내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도민들까지 희생당한 일을 말한다. 4.3사건위원회에 따르면 희생자는 무려 2만 5000~3만 명으로 추정된다.
제주시 봉개동에 위치한 4.3평화공원으로 가는 길에는 벚꽃이 만개해 있었다. 그때도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었을 제주가 꽃만이 아닌 3만여 명의 피로 물들어 갔을 것을 생각하며 아이러니한 꽃 길을 지나갔다.
4.3평화공원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역사를 기억하고자 2008년 개관됐다. 이번 추념식에도 제주도 전역에서 많은 유족과 주민들이 참석했다. 당시 이 섬 전체에 비극이 드리우지 않은 곳이 없었음을 보여주듯 끊임없이 동네 이름을 써 붙인 대형버스들이 공원을 향해 들어왔다.
추념식이 열리는 위령광장까지는 시원하게 탁 트여있고 연못과 조형물까지 있어 여느 잘 꾸민 공원처럼 보기 좋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공원의 가운데에 마치 분화구처럼 놓인 위령탑을 지날 때까지 이 장소를 감상하는 데에만 머물다가, 곧이어 죽 늘어선 비석들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4.3사건으로 희생당한 사람들의 이름, 성별, 당시 연령이 동네별로 새겨진 각명비. 꽃다운 18살, 내 또래의 38살, 부모님이 생각나는 67살, 이름도 없이 누군가의 '자(子)'로 표기된 2살 젖먹이까지 '빨갱이' 폭도로 몰려 무차별적으로 죽어야 했던 이들이다. 아깝지 않은 목숨이 없어, 생판 모르는 사람들의 이름을 보며 비로소 추모공원에 왔음을 실감했다.
각명비 앞에는 유가족들이 가져온 국화꽃이 놓여 있었다. 집에서 챙겨온 조촐한 제사상을 차리고 절을 하는 이들도 있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비에 쓰인 이름을 연신 옷자락으로 닦는 모습에 오래도록 눈길이 머물렀다. 그 나마의 시신조차 찾지 못하고, 육지 이곳 저곳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행방불명인들은 공원의 맨 끝자락 넓은 곳에 개인표석을 세워 추모하고 있다.
행사가 끝나고 공원에 배치된 '비설'이라는 제목의 조각상을 발견했다. 두 살 난 딸을 끌어안고 무릎을 꿇은 채 죽어가는 어머니의 모습. 군인들의 총에 맞아 희생된 봉개동 주민 변병생 모녀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다는 설명에 임신중인 나는 자연스럽게 뱃속의 아이를 생각했다. 제주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데다가 아무 연고도 없는 이 섬에 와서야 조금씩 알게 된 4.3. 부끄럽게도 나는 제대로 배우지 않은 역사지만, 내 아이에게는 꼭 가르치겠다고 다짐한 순간이다.
제주도의 봄, 꽃구경도 좋지만 4.3 사건을 알아가는 여행은 어떨까. 이 작은 발걸음이 비극을 반복하지 않는 시작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