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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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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여행]이제껏 본 중 가장 아름다운 한라산 ‘조배머들코지’

[테마여행]이제껏 본 중 가장 아름다운 한라산 ‘조배머들코지’

by 이현진 객우 2019.07.04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라고 해서 제주의 모든 바닷가가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건 아니다. 협재, 곽지, 함덕, 색달 등 해수욕장이라 부르는 곳으로 사람과 상권이 몰리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서귀포 바다 바로 앞에 집을 두고서도 해수욕장이 아니라서 늘 지나치게 한적한 오션뷰를 누리고 있다.
남원읍의 위미항을 메우고 있는 건 대개 정박해 있는 고깃배들이다. 방파제를 에워싸고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 테트라포드와 건설장비가 놓인 쪽으로 바라보면 더더욱 경관이 아름답지 않다. 아마 이곳에 영화 <건축학개론> 촬영지로 지어진 카페마저 없었다면 이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보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관광지로서는 큰 매력을 찾기 어려웠던 위미항을 산책하다가 올레 5코스 탐방로 중간에서 독특한 기암괴석을 발견했다.

앞에 세운 비석에는 '조배머들코지'라는 이름과 함께 관련된 설화에 대한 설명이 써 있었다. 제주 방언으로 된 이름만 풀이하자면 조배(구실잣밤나무), 머들(돌무더기), 코지(곶)라는 뜻이다.
마치 용이 하늘을 나는 형상(비룡형) 혹은 책을 받아 앉아 공부하는 형상(문필봉형)이 눈에 띄는 조배머들코지는 예로부터 위미리 사람들의 마을 번성에 대한 염원이 담긴 성소다. 그런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풍수학자가 한라산의 정기가 모인 이 기암이 위대한 인물을 낼 것으로 판단했고, 위미리의 한 유력가 김씨를 찾아가 "집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형세이니 집안의 안녕을 위해 이를 파괴하라"고 꾀었다. 그의 말에 속은 김씨는 거석의 태반을 폭파해버렸다.

당시 거석 밑에서 용이 되어 승천하려던 늙은 이무기가 붉은 피를 뿜으며 죽어 있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위미리에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에 마을에서 1997년부터 개발협의회를 꾸려 이를 복원, 비를 세운 것이다. 주민들이 이렇게까지 한 걸 보니 무너지기 전 거석의 본 모습이 더욱 궁금해진다.
조배머들코지를 보고 길을 따라 조금만 내려가면 이 기암괴석만큼이나 황홀한 광경을 마주할 수 있다. 제주 어디서든 보이는 한라산. 하지만 시야를 가리지 않고 온전하게 바라보기란 좀처럼 어려웠던 산이 시원하게 드러나는 포인트를 의외의 장소에서 찾았다. 마침 해가 넘어가고 있어 불그스레한 하늘 덕분에 산의 실루엣이 더 장엄하게 느껴졌다.
이 풍경을 그림처럼 걸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몇몇 가족들은 돗자리를 펴고 집에서 싸온 음식들을 먹고 있었는데, 떠들썩한 해수욕장 캠핑과는 또 다른 단란함이 느껴졌다. 고깃배가 늘어선 항구는 바다로서의 미적 매력이 떨어진다고 홀대했던 육지 출신의 짧은 생각이 겸연쩍은 순간이었다.
설화를 품고 있는 조배머들코지와 이제껏 본 중 가장 아름다운 한라산의 얼굴을 마주하니 에메랄드빛 바다와 모래사장을 갖춘 해변이 아쉽지 않다. 여기 맥주 한 캔만 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내가 지금 임산부라는 게 애석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