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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충절의 고장에서 조우한 선조들의 흔적, 조천비석거리

[유적지]충절의 고장에서 조우한 선조들의 흔적, 조천비석거리

by 하루이야기 2008.02.18

예부터 제주의 조천은 부산관, 인천관과 함께 삼관(三館)으로 불릴 만큼 육지부와의 왕래가 잦았던 곳이다. 조선시대 조정 관리들은 조천관을 이용해 입도했고 육지와 제주를 연결하는 조공선들이 하루에도 수차례 드나들곤 했다. 특히 조천관은 제주를 방문하는 임금을 배알하던 곳으로도 사용될 만큼 제주의 대표적인 관문이었다.
이처럼 조천이 조선시대 이래로 제주의 주요길목으로 이용되면서 당시 이·부임 하는 관리들은 자신의 치적을 기념하는 비들을 하나 둘 세웠고 이것이 비석거리로 발전했다.
옛 조천포구 입구에 위치한 조천비석거리는 앞서 얘기했듯 조선말 제주에 부임했던 관리나 목사들이 자신들의 치적을 과시할 목적으로 세운 것으로 현재 7기의 비석이 남아 있는 상태다. 보통 이런 종류의 비석은 석별의 아쉬움을 표현한 불망비(不忘碑)와 공적을 칭송하는 선정비(善政碑)등이 주를 이루는데 조천비석거리는 모두 선정비들로 이뤄졌다.
비석 내용을 살펴보면 목사채공동건휼민선정비(牧使蔡公東健恤民善政碑. 1855년(철종 6) 8월 ~ 1857년(철종) 6월까지 제주목사를 역임한 채동건 목사의 구휼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 목상백공희수청덕선정비(牧相白公希洙淸德善政碑. 1851년(철종 2) 7월 ~ 1853년(철종 4) 12월까지제주목사로 재임했던 백희수 선정비), 목상정공□□영세부망비(牧相鄭公□□永世不忘碑), 목사금공수익□□비(牧使金公壽翼□□碑. 1649년(인조 27) ~ 1651년(효종 2년) 7월까지 제주목사를 역임한 김수익에 대한 비석), 사상이공의식휼민선정비(使相李公宜植恤民善政碑. 1846년(헌종 12) 2월 ~ 1848년(헌종 14) 3월까지 제주목사를 역임한 이의식의 구휼을 기리기 위한 선정비), 통판금공응빈선정비(通判金公膺斌善政碑. 1891년 8월부터 동년 12월까지 제주판관을 역임한 제주 조천 출신 김응빈의 선정비), 사상이공원달거사비( 使相李公源達去思碑. 1837년(헌종 3) 11월 ~ 1839년(헌종 5) 3월까지 제주목사로 재임했던 이원달을 추모하는 거사비) 등이다.
조천비석거리의 비들은 사상(使相.목사)과 통판(通判. 판관)의 비석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비석 뒷면이 마멸돼있어 건립연대를 비롯한 중요정보들을 확인 할 수는 없다.
【조천비석거리】
▲ 지정번호: 제주도 기념물 제31호
▲ 지정년월일 : 1976년 9월 9일
▲ 소재지: 제주시 조천읍 조천리포구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