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다섯의 현인(賢人)을 기리는 신성한 제단
[유적지]다섯의 현인(賢人)을 기리는 신성한 제단
by 하루이야기 2008.07.31




제주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된 오현단(五賢壇)은 조선시대, 제주로 유배되었거나 관인(官人)으로 부임해 지방의 교학 발전에 공헌한 다섯 분을 기리기 위해 마련된 제단(祭壇)이다.
원래 오현단은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牧使)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는 충암묘를 지은 것이 시초로 이후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충암묘를 장수당 남쪽인 현재의 오현단 안에 옮겨지었다. 그리고 숙종 8년(1682) 귤림서원으로 사액을 하고 김정 선생, 송인수 선생, 김상헌 선생, 정온 선생 등 4현을 봉향하다가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이 추향됨으로써 오현을 배향케 되었다.
고종 8년(1871) 전국에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따라 귤림서원이 헐리기도 했으나 고종 29년(1892), 제주 유림 김의정이 귤림 서원 자리에 오현의 뜻을 후세에 기리고자 조두비를 세웠고 이후 제사를 지내며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됐다.
지금도 단내에는 오현의 유적으로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높이 43∼45cm, 너비 21∼23cm, 두께 14∼16cm의 조두석이 있다. 또한 오현단 서쪽 병풍바위에는 철종 7년(1856), 판관 홍경섭이 새긴 송시열의 필적 마애명(磨崖銘) ‘증주벽립(曾朱壁立)’ 과 김정 선생 및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 있어 찾는 이들에게 유교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한편 오현(五賢)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선생과, 중종 29년(1534)에 목사로 부임했던 규암 송인수 선생, 선조 34년(1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 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분이다.
【오현단】
▲ 지정번호: 제주도 기념물 제1호
▲ 지정년월일: 1971년 8월 26일
▲ 소재지 : 제주시 이도1동
원래 오현단은 선조 11년(1578) 임진이 목사(牧使)로 있을 때 판관 조인준이 가락천 동쪽에 충암 김정을 모시는 충암묘를 지은 것이 시초로 이후 현종 6년(1665) 판관 최진남이 충암묘를 장수당 남쪽인 현재의 오현단 안에 옮겨지었다. 그리고 숙종 8년(1682) 귤림서원으로 사액을 하고 김정 선생, 송인수 선생, 김상헌 선생, 정온 선생 등 4현을 봉향하다가 숙종 21년(1695) 송시열 선생이 추향됨으로써 오현을 배향케 되었다.
고종 8년(1871) 전국에 내려진 서원 철폐령에 따라 귤림서원이 헐리기도 했으나 고종 29년(1892), 제주 유림 김의정이 귤림 서원 자리에 오현의 뜻을 후세에 기리고자 조두비를 세웠고 이후 제사를 지내며 지금의 모습을 띠게 됐다.
지금도 단내에는 오현의 유적으로 오현의 위패를 상징하는 높이 43∼45cm, 너비 21∼23cm, 두께 14∼16cm의 조두석이 있다. 또한 오현단 서쪽 병풍바위에는 철종 7년(1856), 판관 홍경섭이 새긴 송시열의 필적 마애명(磨崖銘) ‘증주벽립(曾朱壁立)’ 과 김정 선생 및 송시열 선생의 적려유허비가 남아 있어 찾는 이들에게 유교의 정신을 전하고 있다.
한편 오현(五賢)은 중종 15년(1520)에 유배된 충암 김정선생과, 중종 29년(1534)에 목사로 부임했던 규암 송인수 선생, 선조 34년(101)에 안무사로 왔던 청음 김상헌 선생, 광해군 6년(1614)에 유배된 동계 정온 선생, 숙종 15년(1689)에 유배된 우암 송시열 선생 등 다섯분이다.
【오현단】
▲ 지정번호: 제주도 기념물 제1호
▲ 지정년월일: 1971년 8월 26일
▲ 소재지 : 제주시 이도1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