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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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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탐라문명의 전환점 '혼인지'

[유적지]탐라문명의 전환점 '혼인지'

by 김예나 2008.10.09

삼성신화에 나오는 고, 양, 부, 삼신인(三神人)이 혼인을 올렸던 연못이 성산읍 온평리에 있는 혼인지이다. 신화에 따르면 탐라에는 태초에 사람이 없다가 한라산 북쪽 기슭에 있는 모흥혈이라는 구멍에서 고·양· 부 삼신인이 솟아났다. 모흥혈은 삼성혈을 말하는 것인데, 삼성혈이 삼신인이 태어난 곳이라면 혼인지는 삼신인이 장가를 들고 첫날밤을 보냈던 장소인 셈이다.
'고즈넉한 가을 바람만이 혼인지를 맴돌고 있다...'
삼성신화는 입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아니라 여러 곳의 고문헌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이다. 문헌마다 약간씩 다르기는 하지만, 이들 삼신인이 삼성혈 구멍에서 솟아나 사냥을 하며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아가다가, 동쪽 바닷가에 떠내려 온 나무함을 발견해 열어 보았더니 석함이 나오고 석함을 열었더니 오곡의 씨앗과 가축과 세 처녀가 나왔고 삼신인은 세 처녀를 배필로 삼아 혼인지에서 신방을 차리고, 세 사람이 활을 쏘아 거처를 정해 오곡을 뿌리고 번창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세 처녀가 가지고 왔던 곡식의 씨앗과 가축은 탐라의 문화가 가죽옷을 입고 사냥을 하던 수렵시대에서 농사를 짓는 농경시대로의 전환점이 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남자가 토착문명을 상징한다면 바다를 건너온 여자는 선진화된 외래문명을 상징하는 셈이다. 이러한 외래문명의 진입은 그 옛날부터 탐라 문화의 발전을 이끌었던 원동력이었고, 이것은 제주가 고립된 섬이라는 한 가지 이유였다.

‘고려사’에는 세 처녀가 일본국에서 왔다고 하고, ‘영주지’에서는 벽랑국(碧浪國)에서 왔다고 한다. 벽랑국은 글자대로 풀이하면 푸른 파도 너머에 있는 나라쯤으로 해석되는데, 벽랑국이 어디인가는 일본, 아라비아, 전라남도 완도, 등으로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확실히 밝혀진 것은 없다.
세 처녀가 닿았던 해안가는 온평리 해안도로변에 위치한 황루알이고, 온평리 마을에서 한라산 방향으로 몇 분만 가면 혼인지가 나온다. 혼인지는 ‘혼인했던 자리’가 아니고 ‘혼인했던 연못’이라는 뜻이다. 연못은 대략 500여 평이 된다고 하는데, 두 곳으로 이루어져 있고 두 연못의 중간에는 벽랑국 삼공주 追達碑 비석이 커다란 덩치로 서있는데, 追達의 뜻 해석이 너무 어렵다. 아마 삼공주가 남자들을 따라서 도달한 곳이라는 뜻인가 보다.

연못에는 이름 모를 수초들이 들어서 있고, 그 가운데로 연못의 터줏대감인 듯 꽃망울을 터트린 원색의 수련이 터를 잡고 앉아 있다. 여기에서 세 남자와 세 처녀는 목욕을 하고 연못 뒤에 있는 숲속으로 들어가 거기에 있는 동굴에서 신방을 차렸다.
간간이 보슬비가 뿌리는 탓인지 아니면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 탓인지 이 역사적인 관광지를 찾아온 관광객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혼례식이 끝나고 신방으로 들어가 버렸던 수천 년 전의 그 날처럼 혼인지는 고즈넉하고 적막하다. 주변은 공원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고 조경수 아래에서 빗물에 젖어있는 벤치는 낭만적인데, 어딘가 허전한 것을 숨길 수가 없다. 혼인지 입구 근처에 세워져 있는 펜션 입간판 하나만이 그나마 체면치레를 하고 있을 뿐 물 사먹을 구멍가게조차도 없는 것이다.
신혼여행의 메카라는 별명이 붙었던 관광제주, 제주문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혼인이 이루어졌던 혼인지에서 신혼여행 관광객들이 북적거릴 때가 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