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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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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사랑을 아는 바다’ 애월

[해수욕장]사랑을 아는 바다’ 애월

by 제주 교차로 2010.09.01

저 벼랑을 치는 달빛이 애월이다.
벼랑을 치고 가는 것이 어찌 달뿐이랴. 파도가 치고 바람이 치고, 정오의 햇살까지도 거리낌 없이 벼랑을 때리건만 어느 것도 달빛을 이기지는 못한 모양이다.
이미 숱한 시인묵객이 입을 댄 관계로 더 이상 애월에 대해 운운한다는 것조차 식상한 일이 기는 하지만 그러나, 제주를 이야기 할 때 애월을 제외한다면 무엇을 들어야 할지 아주 오래 망설인 후에야 입이 떨어질는지도 모른다.
일주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달빛으로 포장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은은하다. 동쪽으로 돌아가는 길이 거의 수면과 동일선상으로 뻗어 있는 것과는 달리 서쪽, 애월을 지나가는 길은 북진하는 7번 국도 변의 동해안처럼 날카롭게 무너져 있다. 애월이라고 할 때의 애(涯)자(字)는 물의 가장자리 또는 끝 부분을 말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애월은 낭떠러지 애(厓) 가깝다. 해안의 보잘것없는 표고에도 철렁 내려앉는 가슴처럼 벼랑은 깊다. 그처럼 깊게 새겨야할 약속이 있다면 멱살이라도 잡아끌고 달빛이 치고 간 자리에 와 손가락을 걸어볼 일이다.
남발되는 감언에 대한 경계라도 되는 듯 해안선에서 한 발 물러선 밭담가에는 백년초라고 불리는 손바닥선인장이 자라고 있다. 이름이야 손바닥선인장이지만 길게 빼문 혓바닥에 가시가 돋친 형상이다. 저 날카로운 가시로 얼마나 많은 사람의 가슴을 찔렀던 걸까. 선인장의 끝부분에 핏빛으로 맺은 열매가 어혈같다. 찔러댄 사람인들 저와 같은 어혈 서너 덩어리 지니지 않았기야 하겠는가마는 혓바닥선인장의 가시를 뽑아 열매의 정수리를 찔러보면 맺혔던 피고름이 왈칵 쏟아질 듯하다.
벼랑을 이룬 언덕을 길게 휘어 읍내로 들어서면 제법 큰 규모의 포구가 나오는데 그곳이 애월항이다. 인근의 한림항에 비해 규모면에서는 미치지 못하나 이름답게 운치가 물씬 풍긴다.
수심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맑은 물은 바닥에 팽개쳐진 해양 쓰레기마저도 투명하게 비쳐준다. 진실로 맑다는 것은 당연히 맑은 것과는 달라서 좀 어둡고 습해서 늘상 외면받는 일상과 사물에 대해 골고루 맑은 빛을 나눠주어야 하지 않을까. 길게 목청을 뽑으며 하늘과 바다 사이를 지나는 대형 여객선이 그림같다.
포구를 지나 아스팔트길을 버리고 오른쪽의 ‘해녀대합실’로 통하는 허술한 길로 접어들면 출입을 제한하는 어촌계장의 ‘안내말씀’에도 불구하고 바위틈에 붙은 홍합처럼 다닥다닥 낚시꾼이 붙어 있다. 복장이 예사롭지 않은 걸로 봐서는 세월을 낚으려는 의사는 없는 게 분명하다.
정리되지 않은 해안이 이어지는 동안 여느 밭담과는 달리 꽤 높이 쌓은 돌담이 따라오는데 이것은 왜구나 해적이 자주 출몰하던 시절에 쌓아놓은 성벽이다.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은 이 돌담에 굴복하고 돌아간 왜구 및 해적들은 몇 명이나 될까. 하도 무너지기 쉬워 오르기는 아예 불가능하다. 성이랍시고 돌을 주워다 쌓은 최초의 사람들은 어쩌면 그 허술함을 노렸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길을 조금 더 가면 양식업체가 밀집해 있다. 그곳에서 해안선을 버리고 한라산을 마주보며 돌아 나오면, 멀리로 덜컥 내려앉던 가슴 같은 단애(斷崖)가 쓸쓸히 서 있다. 이 자리에 서서 밤을 맞이할 수 있다면 달빛이 치는 벼랑 애월(厓月)을 제대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하루가 다르게 밭담의 안쪽을 빽빽하게 채워가는 밭과 갖가지 채소들이, 곳곳에 피어 흔들리는 야생화들과 어우러져 환하다.
이 풍경 위로 쏟아지는 달빛이라. 굳이 잔을 채우지 않더라도 가슴이 먹먹하지 않은가? 이 곳이 바로 애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