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탐라를 만나다 - 삼성혈, 혼인지, 삼사석
[유적지]탐라를 만나다 - 삼성혈, 혼인지, 삼사석
by 원지애 기자 2012.09.10
버스를 타고 , 걸어 다니며 우리 눈에 흔히 보이는 제주의 옛 모습들 .
지명은 흔히 들어봤지만 , 직접 설명하기는 어려운 제주의 역사 .
시간이 흐르며 겉모습은 조금씩 변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제주의 정신 , 매주 월요일 ‘ 소담한 제주여행 ’ 에서는 제주인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주 유적 · 사적지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
지명은 흔히 들어봤지만 , 직접 설명하기는 어려운 제주의 역사 .
시간이 흐르며 겉모습은 조금씩 변하지만 그 속에 담긴 제주의 정신 , 매주 월요일 ‘ 소담한 제주여행 ’ 에서는 제주인의 숨결을 고스란히 간직한 제주 유적 · 사적지를 들여다 보고자 한다 .
삼성혈 , 고량부의 탄생
“ 아득한 옛날 , 세 사람의 신인 ( 神人 ) 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땅으로부터 솟아났다 . 이들은 모흥굴 , 지금의 삼성혈에서 솟아났는데 , 맏이를 고을나 , 그 다음을 양을나 , 셋째를 부을나라 하였다 .”
제주시 이도 1 동 , 고층 건물들 사이로 유난히 푸르른 나무가 울창한 이 곳 . 이 곳 ‘ 삼성혈 ’ 에서 탐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
고량부 삼신인이 솟아났다는 세 개의 구멍이 있는 ‘ 삼성혈 ’.
‘ 삼성혈 ’ 이 처음 조성될 당시만 해도 인가 ( 人家 ) 와 멀리 떨어진 신성한 곳으로서 탐라국 시조를 모셔 제사를 지내기에 적소였었다고 한다 . 그러나 이제는 주변에 광양성당 , 광양초등학교 , 보성시장 , 호텔과 주택가가 자리하는 곳으로 변하였다 .
삼성혈은 돌담이 둘러쳐진 가운데 전체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다 . 삼성혈을 자세히 살펴보면 입구 , 제의 준비처 , 제의처 , 전시관 등으로 4 개 지역으로 구성됐다 . 삼성혈의 세 구멍 주위로 울타리를 둘러놓아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없는데 , 대신 전시관이 있어 삼성혈 신화와 함께 고대 제주에서의 국가형성과 관련한 내용들을 알려주고 있다 .
또한 탐라의 개국 신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었다 .
삼성혈에서 이루어지는 제향으로는 매년 4 월 10 일에 춘기대제를 , 10 월 10 일에는 추기대제를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각각 봉향하고 있다 . 12 월 10 일에는 건시대제라 하여 혈단에서 제를 지내고 이다 .
1 시간여 곰솔이 우겨진 이곳을 걷다보니 나 또한 어느새 탐라인이 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아련히 상상해 본다 . 삼성혈을 둘러보고 나오는길 , 여전히 거리는 아스팔트 열기로 뜨거웠으며 ,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했다 .
삼신인 , 벽랑국 삼공주와 혼인하다 .
“ 고량부 삼신인은 어느날 바닷가에 떠내려온 나무상자 안에 있던 벽랑국 삼공주를 맞이하게 된다 . 삼신인은 곧 하늘에 제사 지내고 , 온평리에 있는 연못에서 목욕재계하고 혼례를 올려 ‘ 흰죽 ’ 이라는 굴에서 살았다 . 처녀 셋을 데려온 사자가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오를 때 생긴 말의 발자국이 지금도 남았는데 , 이곳이 온평리 바닷가 ‘ 황루알 ’ 이라는 곳이다 . 또 삼신인이 목욕한 연못은 ‘ 혼인지 ’ 라 불렀다 .”
“ 아득한 옛날 , 세 사람의 신인 ( 神人 ) 이 한라산 북녘 기슭의 땅으로부터 솟아났다 . 이들은 모흥굴 , 지금의 삼성혈에서 솟아났는데 , 맏이를 고을나 , 그 다음을 양을나 , 셋째를 부을나라 하였다 .”
제주시 이도 1 동 , 고층 건물들 사이로 유난히 푸르른 나무가 울창한 이 곳 . 이 곳 ‘ 삼성혈 ’ 에서 탐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
고량부 삼신인이 솟아났다는 세 개의 구멍이 있는 ‘ 삼성혈 ’.
‘ 삼성혈 ’ 이 처음 조성될 당시만 해도 인가 ( 人家 ) 와 멀리 떨어진 신성한 곳으로서 탐라국 시조를 모셔 제사를 지내기에 적소였었다고 한다 . 그러나 이제는 주변에 광양성당 , 광양초등학교 , 보성시장 , 호텔과 주택가가 자리하는 곳으로 변하였다 .
삼성혈은 돌담이 둘러쳐진 가운데 전체적으로 원형을 이루고 있다 . 삼성혈을 자세히 살펴보면 입구 , 제의 준비처 , 제의처 , 전시관 등으로 4 개 지역으로 구성됐다 . 삼성혈의 세 구멍 주위로 울타리를 둘러놓아 가까이 다가가서 볼 수 없는데 , 대신 전시관이 있어 삼성혈 신화와 함께 고대 제주에서의 국가형성과 관련한 내용들을 알려주고 있다 .
또한 탐라의 개국 신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영상물도 상영하고 있었다 .
삼성혈에서 이루어지는 제향으로는 매년 4 월 10 일에 춘기대제를 , 10 월 10 일에는 추기대제를 후손들이 중심이 되어 각각 봉향하고 있다 . 12 월 10 일에는 건시대제라 하여 혈단에서 제를 지내고 이다 .
1 시간여 곰솔이 우겨진 이곳을 걷다보니 나 또한 어느새 탐라인이 되어 그 시대의 모습을 아련히 상상해 본다 . 삼성혈을 둘러보고 나오는길 , 여전히 거리는 아스팔트 열기로 뜨거웠으며 , 자동차 소음으로 가득했다 .
삼신인 , 벽랑국 삼공주와 혼인하다 .
“ 고량부 삼신인은 어느날 바닷가에 떠내려온 나무상자 안에 있던 벽랑국 삼공주를 맞이하게 된다 . 삼신인은 곧 하늘에 제사 지내고 , 온평리에 있는 연못에서 목욕재계하고 혼례를 올려 ‘ 흰죽 ’ 이라는 굴에서 살았다 . 처녀 셋을 데려온 사자가 백마를 타고 하늘로 오를 때 생긴 말의 발자국이 지금도 남았는데 , 이곳이 온평리 바닷가 ‘ 황루알 ’ 이라는 곳이다 . 또 삼신인이 목욕한 연못은 ‘ 혼인지 ’ 라 불렀다 .”
성산읍 온평리에 위치한 ‘ 혼인지 ’. 이곳 지리를 잘 모르거나 네비게이션이 없다면 아마 찾아오기 힘들었을 만큼 초행길에는 찾기에 어려움이 있다 . 그래서일까 . 한적하다 못해 고요하기까지 한 이곳 . 올레 2 코스에 있어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이 간 혹 있다고는 하지만 이 곳을 찾은 주말에는 푸르른 녹음만이 기자를 반길 뿐이었다 .
고량부 삼신인이 혼인전 목욕재계를 했던 혼인지에는 삼신인과 삼공주의 설레는 마음처럼 불그스레한 연꽃이 가득 있었다 . 혼인지와 이어진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간 곳에는 고량부와 벽랑국 삼공주의 ‘ 신방 ’ 이 있었다 . 신혼방을 몰래 훔쳐보는 심정이랄까 .
숨을 죽이고 굴 속을 들여다 보면 무더위가 싹 가시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신방이 보인다 .
명확하게 구분되어있지는 않지만 굴 내부는 세 개로 구분 돼 있었다 . 신혼방이라 하기엔 좁디좁은 곳이었지만 , 좁은 곳에서는 더욱 서로 밀착해있기 마련이었으리라 .
고량부 삼신인이 혼인전 목욕재계를 했던 혼인지에는 삼신인과 삼공주의 설레는 마음처럼 불그스레한 연꽃이 가득 있었다 . 혼인지와 이어진 정비된 탐방로를 따라 간 곳에는 고량부와 벽랑국 삼공주의 ‘ 신방 ’ 이 있었다 . 신혼방을 몰래 훔쳐보는 심정이랄까 .
숨을 죽이고 굴 속을 들여다 보면 무더위가 싹 가시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신방이 보인다 .
명확하게 구분되어있지는 않지만 굴 내부는 세 개로 구분 돼 있었다 . 신혼방이라 하기엔 좁디좁은 곳이었지만 , 좁은 곳에서는 더욱 서로 밀착해있기 마련이었으리라 .
구멍난 3 개의 돌 ‘ 삼사석 ’
“ 혼인하여 동굴에서 살던 삼신인은 나라를 세우기 위해 샘물이 맑고 비옥한 땅을 구한 뒤 활을 쏘아 화살이 가는 방향의 땅을 나누어 가졌다 . 고을나가 차지한 곳을 일도 , 양을나는 이도 , 부을나는 삼도라 했다 .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이다 . 이들이 활을 쏘았던 곳을 ‘ 활쏜디왓 ’ 이라 하는데 ,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지방기념물 ‘ 삼사석 ’( 三射石 ) 이 그곳이다 .”
“ 혼인하여 동굴에서 살던 삼신인은 나라를 세우기 위해 샘물이 맑고 비옥한 땅을 구한 뒤 활을 쏘아 화살이 가는 방향의 땅을 나누어 가졌다 . 고을나가 차지한 곳을 일도 , 양을나는 이도 , 부을나는 삼도라 했다 . 지금의 제주시 일도동 이도동 삼도동이다 . 이들이 활을 쏘았던 곳을 ‘ 활쏜디왓 ’ 이라 하는데 , 제주시 화북동에 있는 지방기념물 ‘ 삼사석 ’( 三射石 ) 이 그곳이다 .”
제주시 화북동 일주도로 , 버스를 타고 수없이 지나쳤던 그곳에 탐라국의 역사 고스란히 남겨져 있었다 .
삼신인의 활솜씨를 경탄한 김정 목사가 1735 년에 삼사석 비를 세웠고 , 후에 제주인 양종창이 1813 년에 석실을 지어 삼사석을 보존했다 . 석실안에는 구멍이 난 세 개의 돌이 있었으며 , 주변이 돌담으로 둘려 쌓여있어 있어 누구나 쉽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
제주 곳곳에서 찾아본 탐라국의 흔적들 .
사냥하던 삼신인의 마을에 벽랑국의 삼 공주와 함께 농경 기술자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어 정착하게 된 뒤 탐라국을 개국하게 됐다는 제주의 시초에 대해 다양한 입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어찌됐든 제주 탄생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
삼신인의 활솜씨를 경탄한 김정 목사가 1735 년에 삼사석 비를 세웠고 , 후에 제주인 양종창이 1813 년에 석실을 지어 삼사석을 보존했다 . 석실안에는 구멍이 난 세 개의 돌이 있었으며 , 주변이 돌담으로 둘려 쌓여있어 있어 누구나 쉽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
제주 곳곳에서 찾아본 탐라국의 흔적들 .
사냥하던 삼신인의 마을에 벽랑국의 삼 공주와 함께 농경 기술자들이 들어와 마을을 이루어 정착하게 된 뒤 탐라국을 개국하게 됐다는 제주의 시초에 대해 다양한 입장들이 나오고 있지만 어찌됐든 제주 탄생에 대한 풍성한 이야기가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