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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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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이런 웨딩홀 또 없습니다 '혼인지'

[유적지]이런 웨딩홀 또 없습니다 '혼인지'

by 이연서 기자 2017.07.20

지금처럼 날이 너무 더워지기 전, 나는 함덕 해수욕장 앞에서 일하며 하루에 두어번은 웨딩드레스 입은 커플을 봤다. '스드메(스튜디오+드레스+메이크업'라는 웨딩공식 중 스튜디오 촬영을 볕 좋은 야외에서, 아니 기왕이면 제주도에서 하려는 이들이 그만큼 늘어났다. 스냅 촬영뿐 아니라 예식 자체를 제주에서 치르는 외지인들도 적지 않다. 그런 커플들을 위해 항공권부터 야외식장 마련 등 전반적인 준비를 돕는 패키지까지 있단다. 수십 년 전 최고의 신혼여행지였던 제주도가 조금 다른 형태로 결혼의 메카가 됐다.
제주의 바다가 보이고 잔디가 깔린 고급 펜션이나 호텔의 앞마당을 빌려야만 야외결혼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넓은 주차 공간, 500평이 넘는 잔디정원에 연못까지 갖춘 결혼식장이 있다. 성산읍 온평리에 위치한 혼인지다. 이름부터 '결혼을 하는 곳'이라 알리고 있는 이곳은 웨딩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관료로 식을 올릴 수 있다.
결혼식장으로 소개를 시작했지만, 혼인지는 무려 제주기념물 제 17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탐라 시조 3인인 고씨, 양씨, 부씨가 동쪽 바닷가에서 떠밀려온 함 속에서 나온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이해 여기서 혼례를 올렸다는 신화가 전해진다. 그러니까 제주에 많은 성씨인 고, 양, 부씨가 이들의 후손인 셈이다.
비록 벽랑국에서 온 아리따운 공주는 아니지만, 나 역시 이곳에서 결혼을 앞두고 있다. 매 30분마다 줄줄이 예식을 쫓기듯 해치우는 웨딩홀 결혼식에 익숙해져 있어 그 소중한 날에 대한 환상조차 없던 내게 혼인지는 새롭고도 반가운 제안이었다.
야외예식이 가능한데다가,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 탓에 비가 오더라도 실내로 자리를 옮길 수 있도록 전통혼례관이 따로 마련돼 있어 걱정을 덜었다. 럭셔리한 생화 장식도 필요가 없다.
철마다 다른 꽃이 피고 수목이 우거져 있는 덕분이다.(6월에는 수국 명소이기도 하다) 꼭 돈이 굳어서가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누리는 호사가 좋은 것이다.
전통혼례도 가능하지만, 쉽사리 드러낼 수 없는 광활한 이마를 가진 나는 5:5 가르마 스타일로 앞머리를 포기해야 하는 모험을 감행하지 않기로 했다. 혼인지에서는 문화유산 보존의 일환으로 간소하게나마 전통혼례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혼례복 대여와 혼례상 촬영 등이 가능하다.
꼭 결혼을 위해서가 아니더라도 혼인지는 충분히 매력적인 관광지다. 제주를 찾는 이들의 팔 할이 성산을 필수 코스로 삼고 그들의 팔 할은 성산일출봉을 들르겠지만,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곳에 지쳤다면 이 고즈넉한 정원에서의 산책이 '발견'에 가까울 것이다.
입장료는 무료, 날이 좋은 주말이라면 어느 두 사람의 소중한 순간을 함께 축복해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