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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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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지]서귀포 공동묘지 옆 최고의 전망대 ‘충혼묘지’

[유적지]서귀포 공동묘지 옆 최고의 전망대 ‘충혼묘지’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8.31

“딱 하나 흠이 있는데... 묘지가 보여요.”

거실 창문 앞에 서자 정면에 무덤 하나가 독보적인 뷰를 완성하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집이라더니, 고인이 먼저 좋은 터에 앉았던 모양이다.

살 집을 보러갔을 때 중개인은 묘지를 언급하기 전에 우리가 제주도민인지, 육지에서 왔는지 물었다. 그에 따라 이 조건이 단점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육지에서는 흔히 ‘흉하다’고 인식할 수 있는 묘를, 제주도에서는 여기저기 너무 흔하게 볼 수 있어 일상적인 풍경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만큼 터가 좋다는 의미”라며 “묘가 있으면 잡귀도 꼬이지 않는다”는 혜택(?)도 덧붙여 설명했는데, 증명할 길은 없다.
아닌 게 아니라, 제주도에 살면서 무덤에 대한 인상이 무덤덤해졌다. 여느 오름을 가도 너무 쉽게 보이니까. 처음엔 오싹하기까지 했던 마음이 이젠 “아이고, 좋은 곳에 누워계시네요”라고 인사를 건넬 만큼 여유로워졌다.
어디든 묏자리는 양지 바른 곳을 쓰기 마련인데, 이곳의 무덤들은 풍광 좋은 제주에서도 알짜배기 땅을 꿰차고 있다. 개인적으로 꼽는 최고의 명당은 서귀포시 남국선원 가는 길의 공동묘지 터다.

남국선원은 돈내코 계곡에서 산 쪽으로 약 2km 올라간 한라산 국립공원의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사찰이다. 제주도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지인이 서귀포를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명소라며 데려간 곳이었다. 차를 타고 오르기에 어디 전망대이거나 오름이겠거니 했는데, 절의 입구라니. 게다가 절까지 가는 길에는 충혼묘지와 서귀포 공설공원묘지가 이어져 있다.

아직 무덤에 친근해지지 않았을 무렵인데다가 엄청난 규모에 놀랄 만도 한데, 그 와중에 눈앞에 펼쳐진 서귀포 바다에 또 한 번 놀랐다. 쭉 뻗은 수평선과 크고 작은 섬들을 막힘없이 보여준다. 도시에서만 나고 자란 내게, 눈에 걸리는 게 없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주는 전망이었다. 매일 이 모습을 보고 있을 고인들이 부러울 정도로.

그 풍광을 보고 진입한 남국선원 내부도 아름답다.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기 때문에 관광객보다는, 종교를 떠나 경건한 마음을 지닌 순례자로서의 방문이 좋을 듯하다. 나는 지난 석가탄신일에도 이곳을 찾아 연등에 이름을 달고 왔다. 죽은 자의 안식처를 지나, 참선을 구하는 곳에서 삶의 안녕을 기원하는 걸음이 묘하게 마음을 차분히 만든다.

묘지라는 말만으로 공포감이 들게 만든 내 어릴 적 귀신이야기 탓을 하며, 제주의 무덤을 다시 본다. 산 사람들처럼 죽은 이들에게도 좋은 곳만을 보여주고 싶은 남은 가족들의 마음이 어찌 무섭게 느껴질까. 이렇게 거부감을 덜고 제주의 묘지를 바라보면, 그 앞에는 대부분 최고의 전망대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