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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체험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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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공원]위미동백군락지,길을 잃고 만난 할머니

[테마공원]위미동백군락지,길을 잃고 만난 할머니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8.01.04

겨울이 되면 동백을 보러 가는 게, 제주살이 3년차에 접어든 나의 연중행사가 됐다. 이름처럼 겨울에 꽃이 그것도 아주 붉게 피니까 만물이 생동하는 봄에 벚꽃이나 유채꽃을 보는 것과는 또 다른 신비한 느낌을 준다.

추위에 약한 동백나무는 우리나라 남부에 서식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에는 동백을 주제로 한 관광지 몇 군데가 있는데, 꽃이 피는 한겨울에는 그 주변에 주차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나도 지난해 겨울에는 동백으로 가장 유명하다는 안덕면 상창리의 테마파크 카멜리아힐을 찾았다. 입장료는 무려 7천원. 하필 그날 신분증을 갖고 가지 않아 도민할인을 받지 못하는 설움까지 안고 입장했지만, 때를 잘 못 맞춘 것인지 동백꽃을 충분히 감상할 수 없었다.

올해는 그보다 이른 12월 중순에 동백군락지가 있다는 남원읍 위미리를 찾았다. 네비게이션을 찍고 도착한 목적지에는 푸른 잎만 무성한 키 큰 나무들뿐. 이번에도 개화시기를 맞추지 못한 것인가.
분명히 sns 상에 유명한 사진에는 쏟아져 내릴 듯이 많은 동백꽃이 가득 차있었는데, 한 송이도 안 보이는 게 장소를 잘못 찾은 듯했다. 우리 네비만 이상한 게 아닌지, 두리번거리는 관광객들과 정처 없이 같은 곳을 돌기만 하는 렌트카들이 그 외딴곳에서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결국 맞닥뜨리게 되는 붕어빵집에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길을 물었는지 아예 지도가 그려져 있었다.
알고 보니 그곳은 기념물로 지정된 토종동백군락지로, 1858년생인 현맹춘 할머니가 17세에 위미리로 시집와 잠녀(해녀)로 열심히 일하며 모은 돈 35냥으로 산 황무지였단다. 바람이 세서 농사가 어려운 바닷가마을에 방풍역할을 하도록 동백나무숲을 만들겠다며 그는 한라산에서 동백나무씨 서말을 가져다가 여기에 심었다고 한다. 차도 없을 그 옛날에 하염없이 험한 길을 걸어 씨를 가져와, 싹이 틀지도 의심스러운 척박한 땅에 심었을 한 여자를 생각하니 짠하다. 그러면서도 이제는 비옥해진 땅 위에 하늘을 찌를 듯이 자라난 동백나무들처럼 위대해 보인다.
결국 우리가 찾던 동백나무숲은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다른 곳에 있었다. 도민할인 없이 공히 입장료 3천원을 내면 동백꽃을 질리도록 볼 수 있다. 나무도 어찌나 동그랗게 이발(?)을 잘 해놓았고, 얼마나 빽빽하게 심어놓았는지 미로정원을 헤매는 느낌이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어디를 찍어도 포토존을 만들며 관광객들을 충족시킨다.
그런데 꽃구경을 실컷 하고 나니 현맹춘 할머니의 동백나무숲이 더 아른거렸다. 그 시절, 무모한 짓이라는 동네사람들의 걱정을 들으며 동백아가씨는 어떤 마음으로 나무를 심었을까. 언젠가 그 귀한 꽃을 꼭 보러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