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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 나쓰메 소세키 『태풍』

[도서]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 나쓰메 소세키 『태풍』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5.06.24

태풍 』
인간의 교제에는 언제나 '아차'가 생략된다.
생략된 ‘아차’가 거듭되면 싸움 없이도 절교를 하게 된다.
친한 부부친한 친구가 마음속의 ‘아차아차’ 때문에 점차로
서로에게 정나미가 떨어지게 되는 법이다.
-본문 중-

「태풍」. 오래 전에 읽은 책이었다. 갑자기 “맞아그런 책이 있었지.”하고 떠올라 책장을 뒤적이며 책의 내용을 떠올려 보려 노력했지만 통 생각이 나질 않았다. 소세키의 작품 중 가장 덜 읽혔고 문학 작품으로서의 평이 엇갈리는 작품이라는 배경 설명은 떠오르는데 내용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머릿속에 청년 둘이 벚꽃 나무 아래에 서서 대화를 하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겨우 찾은 책을 펼쳐 읽어 보니 머릿속 이미지는 틀림없이 책을 통해 소세키가 말한 이야기의 한 장면이다. 그렇다고 그 장면이 엄청난 표현력으로 눈에 잡힐 듯 묘사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건조한 문체로 표현된 간결한 장면이었다. 신기한 경험이다. 한 권의 책이 시간이 지나 머릿속에 한 편의 그림으로 남아 있었다.

예전 일본 천 엔짜리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했던일본의 셰익스피어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의 대표작은 「태풍」이 아닌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다.

나쓰메 소세키의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사람도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라는 책제목은 한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실제로 정말 좋은 문학 작품이다. 진득하게 책 한권 읽을 여유 없는 시대를 사는 현대인이 읽기에 조금 많다 느낄 수 있는 분량의 소설이지만 훌륭한 내용이 소세키 특유의 유머로 버무려져 있어 무리 없이 끝까지 읽을 수 있다. 이 작품은 워낙 잘 알려져 있으니 소개는 이쯤하기로 하겠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외 소세키의 대표작으로는 「마음」「도련님」「그 후」 등이 있다. 제목부터 필자가 소개하려 하는 「태풍」과는 느낌이 다르다.

‘직설적이다.’

책의 전체적인 느낌을 이야기 하라면 이 표현이 가장 적절하다. 그렇기 때문에 문학 작품으로서는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듯도 하다. 등장인물들은 격변하는 사회에 대해사랑에 대해돈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 한다. 주인공 ‘도야’는 늘 계몽적인 대사를 읊는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위해 가난하고 불편한 삶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책의 매력은 ‘옳음’을 이야기하는 것에 있지 않다. 옳은 삶을 추구하는 남편 때문에 고생하는 아내가 등장한다. 도야와 아내는 100년도 훨씬 지난 옛날 속에서 실랑이를 하는데 그 모습이 현재 우리네 그것과 다르지 않다. 작품의 배경은 1900년대 초반인 근대인데 등장인물들의 고민과 대화가 스마트폰으로 모든 정보를 알아내고 외국 한 번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없는 이 시대 사람들의 그것과 같다. 소세키가 어찌해서 아직까지도 일본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로 꼽히는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소세키는 「태풍」을 통해 자신이 평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문학적 장치랄지 기교작품성 같은 것은 상관없다. 정말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야기해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 누더기를 입은 ‘도야’가 자신을 비웃는 관중들 앞에서 연설을 하는 대목 또한 소세키의 이러한 마음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일 것이다.

“그런 사람의 가족을 돕는 것은 틀림없이 좋은 일이지만 사회주의라고 오해를 사게 되면 곤란하니...”
“오해를 사게 돼도 상관없어. 국가주의고 사회주의고 알게 뭔가? 단지 올바른 길만 걸으면 되는 거야. 그런 일은 없을 거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은 없을 거야. 지금이 도쿠가와 막부 시대도 아니고”
-본문 중-

필자는 소세키식의 유머를 상당히 좋아한다. 예를 들어 <나카노 군은 하다못해 자기 의견에 대한 비평을 (도야에게) 조금이라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그도 아니면 얼마 전 들은 도야에 대한 이야기를약간의 호기심에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나카노 군은 한가했던 것이다.>같은 식이다. 진지한 것의 결론이 별 것 없다. 반대로 별 것 없음에서 진지함이 나올 때도 있다. 이 또한 소세키가 삶을 추구하는 방식이 아닐까 싶다.

태풍같이 격변하는 시대에 ‘도야’는 꿋꿋이 버틴다. 아니다. 어떤 시대에고 같은 패턴이 반복되는 이 세상을 향해 ‘도야’가 태풍같이 덤비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태풍의 계절이 돌아온다. 거센 태풍이 휘몰아쳐 주어야 깊은 바다 속 생태계가 균형을 잡는다. 인간은 다시 한 번 인간의 나약함을 깨닫는다. 곧 태풍이 휘몰아칠 것이다.

박혜림 객원기자
hyerim1010@naver.com
<1867-1916. 2004년 신권이 나오기 전까지 천 엔짜리 지폐의 주인공이었고 일본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로 꼽히는 일본의 대표적인 국민 작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