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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영화]“너희가 힙합을 아느냐”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5.09.23

‘억압’, ‘저항’, ‘표현’이라는 삼박자가 만들어낸 문화 <HIP-HOP>
얼마 전 막을 내린 케이블 방송의 「쇼미더머니 시즌4(Show Me The Money 4)」가 지난여름 내내 화제였다.

「쇼미더머니」는 반복적인 비트 위에 직접 쓴 가사를 얹고 각자 독특한 플로우로 리듬을 타며 랩을 하는 MC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출연한 랩퍼들 뿐만 아니라 그들의 랩 가사 한마디까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방송 때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쇼미더머니」의 뒤를 이어 방송되는 프로그램「언프리티 랩스타」또한 여성 MC들의 랩 대결이다.

지난 10일 개봉해 눈에 띄는 마케팅도 없이 입소문을 타며 네티즌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영화 「스트레이트 아웃 오브 컴턴(Straight Outta Compton)」. 미국의 80년대를 배경으로 힙합이라는 장르의 탄생부터 이제는 힙합의 전설로 불리는 실제 인물들의 스토리를 담고 있는 영화다.

요새는 유행한다고 모두가 나팔바지를 입거나 너도나도 통기타를 튕기지는 않는다. 획일적인 유행보다는 다양한 개성이 공존하는 시대다. 그러나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요즘의 대세는 ‘힙합’이 확실하다.

90년대에 초·중·고 학창 시절을 보낸 필자는 우리나라에서의 힙합의 시작을 고스란히 목격한 세대다. 90년대 초반 현진영과 듀스, 서태지와 아이들 등을 통해 국내에 퍼지기 시작한 힙합 문화는 90년대 후반 HOT 등의 초기 아이돌 그룹 등을 통해 전국 청소년들을 열광시켰다. 동네 공원이나 공터는 브레이크 댄스를 연습하는 동네오빠들의 차지였고, 땅바닥을 질질 끌고 다니는 통 큰 힙합 바지 때문에 부모 세대에게 혼이 나는 것은 일상이던 시절이었다. 노래에는 소질이 없었던 필자도 1TYM, 조PD 등의 랩을 열심히 따라하며 ‘힙합’이란 단어가 ‘엉덩이(Hip)를 흔들다(Hop)’는 뜻이라는 둥 *‘이스트 코스트(East Coast)’가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보다 세련되었다는 둥 하며 힙합공부를 시험공부보다 열심히 하기도 했다.

*이스트 코스트(East Coast), **웨스트 코스트(West Coast) : 힙합의 고향인 미국에서는 뉴욕을 기반으로 하며 비교적 단조로운 비트에 가사를 중시하는 이스트 코스트와 LA를 기반으로 하며 가사보다는 비트에 중점을 두는 웨스트 코스트가 대세를 이루며 힙합의 주류를 이루었다. 힙합의 정통성을 두고 벌어진 두 세력의 전쟁 수준의 다툼은 투팍(2PAC) 등 전설적인 랩퍼들을 향한 총격전으로까지 이어졌다.

힙합은 70년대 후반 미국의 할렘가에 살던 흑인들에 의해 탄생했다. 저 유명한 마틴 루터 킹의 목숨을 건 흑인 인권 신장 운동에도 불구하고 뿌리 깊은 인종차별은 그들을 뉴욕의 뒷골목 할렘으로 내몰았다. 몰려다니기만 해도 범죄자 취급을 받던 그들은 마침내 분노했다. 그리고 저항했다. 흑인 특유의 흥을 실어 표현한 그들의 저항이 바로 힙합이다.
힙합에는 4가지 요소가 있으며 그것은 춤을 추거나 랩을 할 수 있도록 비트를 만들어 내는 디제잉(DJing), 직접 가사를 만들고 랩을 하는 엠씽(MCing), 브레이크 댄스를 기본으로 하는 비보잉(B-boying), 스프레이 페인트 등을 이용해 벽에 낙서를 하는 그래피티(Graffiti)라고 한다. 분류하고 설명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잘도 만들어냈다. 힙합은 그냥 억압된 자들이 흥겹게 표현하는 저항이었다. 그러던 것이 분류하고 설명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덕분에 다양한 요소들을 덧입으며 하나의 흐름이 되었고 나아가 완전한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차별 속에 살던 흑인들의 힙합이 퍼져 나가며 힘을 갖게 되자 흑인이 아닌 이들이 하는 힙합은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차별 당하는 웃지 못 할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힙합을 주제로 한 또 다른 영화「8마일(8Mile)」은 흑인 랩퍼들 사이에서 차별 당하던, 지금은 제일 잘 나가는 백인 랩퍼 에미넴(Eminem)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공개적으로 서로를 비방하는 랩퍼들의 ***디스전 등 아직도 낯설고 거부감이 드는 부분들이 존재하지만 힙합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확실히 자리를 잡았다. 한 철 패션과 음악의 유행으로 그칠 것 같았던 힙합이 그 생명력을 다시 한 것이다. 세월이 흘러 힙합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 또 다시 대세가 된 건 그것의 뿌리가 억압과 차별로 인한 고통 속에서 살던 이들의 몸부림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디스(dis) : 디스-리스펙트(dis-respect, 무례)의 줄임말로 랩퍼들이 랩을 통해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힙합의 하위문화 중 하나이다.

박혜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