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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영화]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6.06.29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지난 12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나이트클럽에서 사상 최악이라 할 수 있는 총기 난사 사건이 일어났다.

단일 총기범에 의해서는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이번 사건을 접하며 떠오르는 영화가 있었다. 국내에서는 2012년 7월에 개봉한 「케빈에 대하여」다.
너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

그 누구보다 자유롭게 살던 여행작가 ‘에바(틸다 스윈튼 분)’는 생각지 못하게 임신을 하게 된다. 원치 않은 아이 때문에 갑자기 발목이 잡힌 상황도 당황스럽지만 그녀를 더욱 당황하게 하는 것은 태어난 자신의 아이가 이해하기 힘든 존재라는 것이다.

‘케빈(에즈라 밀러 분)’은 아주 어려서부터 그랬다. 엄마인 에바와 있을 때는 차라리 공사장의 소음을 듣는 것이 편안하다고 여겨질 만큼 울어대더니 아빠가 오면 얌전하고 착한 아기가 된다.

가르쳐 주지 않은 것도 알만큼 영특하지만 엄마의 약을 올리듯 고집스럽게 말을 하지 않고 일부러 대소변을 가리지 않는다. 엄마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을 남들에게는 자신의 실수라 설명하고 이것을 약점으로 삼아 엄마를 꼼짝 못하게 한다. 소중하게 꾸며 놓은 에바의 방을 난장판으로 만들고도 당당하기만 하다. 오직 ‘엄마’라는 존재만을 향해 잔뜩 날 서 있는 케빈의 악의(惡意)를 에바는 참을 수 없다.
당신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

에바는 케빈의 여동생 실리아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엄마다. 갓난쟁이가 울어댄다고 유모차를 공사장에 세워 두고 소음 속에 서 있던 케빈의 때와 비교하면 에바는 천사가 됐다. 숫자 123을 가르치려는 엄마에게 꼬마 케빈은 “313233...”을 읊으며 자신의 영특함을 드러내지만 자신이 무시당했다고 생각한 에바는 그런 아들을 무시하기 위해 어려운 산수 문제를 들이민다. 자신을 낳은 친엄마에게서 “네가 태어나기 전이 나는 훨씬 행복했어.” 같은 말을 들을 때 아이의 기분은 어떨까?

영화에서는 내내 긴장감이 느껴진다.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에바와 케빈에 대한 회상씬 뿐 아니라 에바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현재의 이야기에서도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신나는 컨츄리 음악이 배경으로 흘러나오는데 길을 가던 할머니가 느닷없이 에바의 뺨을 때리며 저주를 퍼붓는다. 자주 있는 일인 듯 그녀는 화도 내지 않고 가던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초반스페인의 토마토 축제에서 그 누구보다 자유로운 몸짓을 보이던 에바가 어쩌다 마트에서 계란을 고르던 중 누군가를 보고는 토마토 수프 깡통들 앞으로 숨는 처지가 되었을까?

그 누군가가 그녀가 고른 계란을 악의적으로 하나하나 모두 깨뜨렸는데도 그녀는 군말 없이 값을 치르고 돌아와 껍질이 잔뜩 섞인 계란 요리를 한다. 식사를 하며 계란 껍데기를 하나하나 입으로 발라내는 에바의 모습은 스스로 고행을 택한 참회의 몸짓 같다. 무엇이 그녀를 이토록 참회하게 만든 걸까?

스토리의 전개에서 이해하기 어렵거나 해석이 불분명한 부분은 없다. 단지 어느 쪽의 입장과 상황에 더 마음이 가는지만 있을 뿐이다. 자그러니까 우리는 에바와 함께 ‘우리’가 되어 이야기 해 볼 필요가 있다. 타고난 욕망과 주어진 의무에 대해강요된 모성애와 준비되지 않은 엄마들에 대해범죄자의 가족이 된 이들의 심정에 대해그리고 무엇보다 케빈에 대해.

박혜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