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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소설 『마더 나이트 』

[도서]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소설 『마더 나이트 』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7.08.30

잘 쓰인 문학 작품이라는 생각이 드는 때는 그런 때다. 지금의 나 혹은 주변과 전혀 다른 시대적·지리적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평소에는 자각되지 않다가 읽는 순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인류 보편적 내용을 나완 조금의 연관성도 없는 등장인물이 이야기할 때. 거기에 깊이 있는 유머까지 숨어 있다면 그 작품은 최고다. 마더 나이트의 주인공 캠벨을 통해 커트 보니것이 말한대로, <원 세상에, 사람들은 어떤 삶을 위해 애를 쓰는지! 원 세상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란 어떤 곳인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당원과 동시에 미국 스파이 노릇을 했던 하워드 W. 캠벨의 고백을 담은 이 소설은 실제로 2차 세계대전을 겪은 작가의 경험과 고뇌가 곳곳에 녹아 있어 더욱 생생하다. 전쟁 전에는 잘 나가던 극작가이자 아름다운 아내를 둔 남편이던 젊은 그였지만 종전 후의 그는 아무것도 아니다.

“원 세상에, 사람들은 어떤 삶을 위해 애를 쓰는지!
원 세상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란 어떤 곳인지!”

목숨같이 사랑하던 아내 헬가는 죽었고 극비리에 스파이 활동을 한 탓에 그의 나치 행적만 남아 있어 조용히 숨만 쉬면 살아가야 하는 초라한 늙은이일 뿐이다.

어느 날 그에게 동시에 배달된 두 통의 우편물, 숨어 사는 나치 당원을 찾아냈으니 조만간 추방하겠다는 경고장과 ‘백인 기독교 민병대’(극단적인 백인우월주의자가 발행하는 신문으로 해당 호에 캠벨의 나치 행적을 찬양하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직접 그를 찾아온 ‘백인 기독교 민병대’의 발행인 존스 박사와 그 일행에 대한 묘사는 특정 정치인을 열렬히 지지하는 우리나라의 모 극우단체 모습 그대로다.
너무 나이든 탓에 걸음을 옮기는 것도 힘에 부치지만 그들의 굳은 신념만은 노쇠하지 않고 더욱 강건해졌다. 정통 백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많은 유대인들을 학살하는데 한 몫을 했던 캠벨을 찬양하기 위해 그들은 숨을 헐떡이며 그의 다락방을 찾아온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의 아내 헬가를 선물로 데리고. 행복의 시작인걸까, 불행의 시작인걸까?

<만일 내가 독일에서 태어났다면 나 역시 나치당원이 되어 유대인과 집시와 폴란드인을 닥치는 대로 두들겨 패고, 눈더미 밖으로 장화만 삐죽 나온 시체들을 내버려두고 나 자신은 따뜻한 방에서 고결한 배를 두드렸을 것이다. 세상은 그런 거니까.> 작가의 서문에 커트 보니것이 쓴 것처럼 보니것은 이 작품을 통해 누군가에게는 최고의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최악이 되는 세상의 단순하고도 복잡한 이치를 이야기한다.

블랙 유머로 유명한 작가의 작품답게 무거운 주제지만 술술 읽힐 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웃음이 터진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영화감독 박찬욱 등 수많은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작가로 꼽는 커트 보니것의 다른 작품들도 모두 추천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