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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도서]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 

by 제주교차로 2020.05.21

건축가, 빵집에서 온 편지를 받다-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 건축주 도모노리가 함께 씀
- “처음 뵙겠습니다. 홋카이도 맛카리무라에서 사는 진 도모노리라고 합니다. 맛카리무라는 손바닥만 한 마을이며, 저는 이곳에서 아내와 네 살배기 아들과 함께 조립식 패널로 만든 작은 집에서 빵집 ‘블랑제리 진’을 운영하며 살아가고 있어요” 건축주 도모노리의 편지 2009년 3월 7일 P.29 中 -

일본의 저명한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어느 날, 홋카이도의 빵집주인에게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본래 프랑스 요리사였지만 파리의 유명한 빵가게에서 빵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도 했던 건축주 도모노리는 장작 가마를 이용해서 빵을 굽고 별다른 마무리 작업을 않는 소박한 빵을 만들어내며 살고 있다. 이 작은 빵집은 빵 나오는 시간이면 사람들이 줄지어 기다렸다가 빵을 사가는 곳으로 매장이 좁고 노후된 빵 가마도 교체할 시기가 다가오자 그는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여러 건축 작업에 매료되어 그에게 이런 편지를 보낸다. 풍요로움과 존귀함, 자연소재와 절약을 먼저 생각하는 빵집주인에게 이끌리듯 건축가는 정성어린 편지를 주고받는다. 이 책은 그러한 건축주의 견고한 생각을 담아낸 빵집을 겸비한 가족의 집을 짓는 과정을 보여준다. 빵 가마가 설치되는 방과 공방 겸 매장 사이에 복도와 같은 완충지대가 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진 도모노리의 말에 기본 설계는 1안부터 최종 7안까지 간 끝에 크게 전진한다. 그때는 해를 한 해 넘긴 2010년 1월이다. 집을 짓는 과정은 너무 힘들어 10년은 늙는다고도 표현한다. 인생을 살면서 내 집을 하나 만든다는 것은 그만큼 수행이기도 할 것이고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골조와 나무하나, 창호 하나에 에너지를 심어 넣는 작업이기에 많은 시간이 당연히 필요할 것이다.
- “건물이 주위 풍경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는가, 건물이 지나치게 크지 않나, 내부는 편안한 공간이 될 것인가, 동선은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는가 등등의 결과가 상량 단계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에 사실 내심 안절부절못하게 마련이에요. 솔직히 털어놓으면 이번에 가장 걱정되는 점은 빵 가마를 설치하는 방의 지붕을 지탱하기 위해 십자가 모양으로 올린 들보의 두께에요. 기존 창고의 들보를 십자가 모양으로 재활용하는 아이디어는 진 도모노리 씨가 편지에 적어 놓았던 <예전에는 빵을 가마에 넣을 때 십자를 긋고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라는 말에 감명을 받고 거기서 힌트를 얻은 것이었죠” 2010년 6월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의 편지 中 P.125 -
그들은 여러 통의 편지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집의 구조와 디자인을 이어가며 몇 번의 만남을 갖는다. 빵집 주인은 건축가에게 편지를 보내기 전부터 새로 짓는 빵집에 들여 둘 가마가 있었다. 프랑스에서 제조되는 이 가마를 직접 현지에서 주문에 들여왔지만 중심부분이 조립된 형태여서 이미 완성된 문을 다시 떼어내고 작업하는 큰 문제도 발생하기도 한다. 상량식에는 재단에 떡 대신 빵을 공양했고 상량식에 와준 마을 사람들에게 직접 만든 빵과 과자를 하늘 높이 뿌려 즐겁게 진행된다. 건축주와 건축가 모두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며 신뢰가 쌓여가며 건축의 근원적 의미와 서로의 삶의 태도를 보여주는 편지들.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설계 비용의 절반을 빵으로 받고 싶다고 편지를 보내고 건축주 진 도모노리는 한 달에 두 번씩 블랑제리 진에서 만드는 빵을 택배로 보내주기로 한다. 이 빵은 건축사무소가 없어질 때까지 보내겠다는 약속을 하며 말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따뜻한 빵 내음이 절로 나는 듯하다. 이런 집짓기의 과정은 가마에서 빵이 나오는 순간만큼 긴장되고 떨리지만 무엇보다 서로의 생각을 담아내는 과정이 있기에 더 따뜻한지도 모르겠다.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