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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이윽고 슬픈 외국어

[도서]이윽고 슬픈 외국어

by 박혜림 기자 2013.10.17

기자 , 문화를 추천하다

이윽고 슬픈 외국어
휴대폰이 처음 대중화되던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라면 “ 노르웨이의 숲에는 가보셨나요 ?” 라는 유명한 광고 카피를 어렵지 않게 상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 휴대폰 광고 속 기차에서 여자가 보던 책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 상실의 시대 ( 원제 - 노르웨이의 숲 )’ 다 . 이 광고로 ‘ 상실의 시대 ’ 는 단숨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올랐다 .

지난 4 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간 발매를 앞두고 말 그대로 ‘ 일본 열도가 들썩 ’ 했다고 한다 . ‘ 하루키스트 ’ 라고 불리는 하루키의 마니아들이 발매 전일부터 서점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는 등 마치 유명 팝가수의 컴백을 방불케 하는 진풍경이 펼쳐진 것이다 . 발매 7 일 만에 100 만부를 돌파했다는 이 어마어마한 책의 우리나라 판권이 어느 출판사로 돌아갈 것이냐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 노벨상 수상자에 배팅하는 영국의 유명한 도박 사이트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올해의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점쳐지기도 했다 . ( 하지만 올해의 노벨상은 캐나다의 작가 앨리스 먼로에게 돌아갔다 .)

너무나도 큰 작가가 되어버린 하루키지만 사실 그의 글에 대해서는 이래저래 말들이 많다 . 스무 살의 필독서로 광고되는 ‘ 상실의 시대 ’ 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저변에 깔고 있는 ‘ 해변의 카프카 ’ 등 그의 많은 소설들이 큰 기대 때문인지 고평가 , 혹은 저평가 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 하지만 그의 에세이는 다르다 . 접하는 대부분의 이들에게 유쾌한 공감과 한숨 깊은 생각을 내민다 .

여러 권의 그의 에세이가 우리나라에도 출판되었지만 오늘은 1996 년 ‘ 슬픈 외국어 ’ 로 출간된 이후 2013 년 원제를 그대로 번역하여 재출간된 ‘ 이윽고 슬픈 외국어 ’ 를 들여다본다 .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 책은 지금의 계절과도 상당히 어울리는 느낌이다 .
하루키가 미국에 머무르던 당시의 경험과 느낌들을 담고 있는 이 책을 읽다 보면 ‘ 무라카미 하루키 ’ 라는 ‘ 특별한 ’ 작가의 ‘ 대단한 ’ 느낌보다 , 한 인간이 낯선 땅에서 느끼는 무력감 , 호기심 , 이질감 , 즐거움 같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소소한 감정들이 느껴진다 . 또한 이것은 ‘ 에세이 ’ 라 이름 붙은 모든 글들의 묘미이기도 하겠으나 글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하루키를 느낄 수 있다 . 일본인 특유의 겸손함이 곳곳에 묻어 있고 거기에서 시작하는 사소한 유머들은 하루키의 일상생활을 상상하게 한다 .

역설적이게도 ( 또한 당연하게도 ) 이 단순한 글을 통해 뛰어난 작가로서의 하루키도 느낄 수 있다 . 주어진 환경이 더 이상 영감을 주지 못할 때 인간은 새로운 것을 찾는다 .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탐험가가 아닌 이상에야 환경의 변화에는 제한이 있고 그래서 보통의 인간은 다른 것 , 이를테면 최신 휴대폰의 구입이랄지 어떤 탤런트가 어떤 옷을 입었다더라 , 예쁘더라 하며 그 옷을 찾아보는 등으로 자신의 새로움의 추구의 욕구를 만족시킨다 .

우리가 하루키에게 감탄하는 건 , 하루키가 뛰어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건 매일 같은 것을 보고도 새로운 것을 느끼는 ‘ 눈 ’ 과 그것을 글로 표현해 내는 의지를 가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

일본에서부터 자신의 취미였던 마라톤에 대한 이야기부터 재즈 , 외국어 배우기 등에 대한 개인적인 고찰들이 가득한 ‘ 이윽고 슬픈 외국어 ’ 다 .

하루키의 머릿속 생각과 다양한 소재들에 대한 그의 시선 , 편안한 문체를 느끼고 싶다면 이 가을 그의 에세이 한 권을 손에 들어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