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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 영화『GO』

[영화]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 영화『GO』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5.05.21

문화를 추천하다“이름이란게 뭐지?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로인 것을”
-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 中
이것은 이름 많은 한 청년의 연애 이야기다.
재일 조선인스기하라또라이재일 한국인이정호...
그를 뭐라고 불러야 할까?
한 때는 열혈 마르크스 신봉자였던 전 프로 복서 아버지를 둔 주인공 스기하라(일단 이렇게 부르기로 하자.)는 일본에서 태어나 조총련계 초·중학교를 다녔다. 스기하라가 어릴 적부터 권투를 가르쳐 온 거친 아버지는 어머니와의 하와이 관광을 위해 한국 국적을 취득한다. 아들에게 “넓은 세계를 봐라. 국적 따윈 얼마든지 쉽게 바꿀 수 있어”라고 자신 있게 말했지만 본인의 생각보다도 국적을 바꾸는 절차가 간단하다는 것에 실망하면서 말이다. 이 장면에서부터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무언가낯설다.
필자의 지인 중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온 일본인이 있었다. 어느 날 “부산에 갔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왜 한국에 왔느냐고 물어서 ‘조선말 배우러 왔습니다’라고 하니까 빨갱이냐며 욕 했어요. 왜 그러는 거예요?”하고 그가 물었다. 왜 ‘조선말’이라고 했는지 묻는 필자에게 그는 “북한도남한도 같은 언어를 쓰고 있는데 ‘한국말’이라고만 하면 합당하지 않잖아요. 그래서 그 전 국명인 조선을 따서 ‘조선말’이라고 했는데 그게 뭐가 잘못됐나요?”하고 대답했다. 신선한 생각이라고 생각했지만 ‘조선말’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그가 낯설었던 것이 사실이다.

조선에서 대한민국이 된지 따지고 보면 그리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이 아니지만 옛 조선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우리는 정작 우리의 옛 이름옛 모습을 국사 시간을 통해 알 뿐 전혀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이 땅이 아직 하나였을 때 여러 가지 이유로 해외로 나갔다가 조국의 분단을 맞은 이들은 여전히 옛 조국을 그리워하고 언젠가는 옛 조국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 희망한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 살며 남한의 국적도북한의 국적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이 바로 ‘재일 조선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낯선 느낌이 드는 것은 등장인물들이 가끔 사용하는 어색한 한국말 때문만은 아니다. 주인공이 다니던 조총련계 학교에서 보이는 북한의 색깔 때문만도 아니다. 한국 땅에서 태어나 한국인으로 자란 한국인들은 느껴보지 못했고 느낄 필요성도 없는 부분에 대한 정체성 혼란과 위기가 영화 곳곳에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많이 벗어났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 ‘이것은 단지 주인공 스기하라의 연애 이야기다.’

부모의 하와이 관광과는 상관없이 스스로 한국 국적을 선택하고 일본고등학교로 진학한 스기하라. 조선학교 최고의 또라이였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매일 싸움을 일삼으며 취미는 조선학교 시절 친구 정일이 추천해 준 만담 읽고 듣기다. 꽃처럼 예쁜 일본인 여자친구 사쿠라이를 만나 보통의 커플들이 하듯 데이트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무언가 불편한 우리의 주인공 스기하라. 여자친구에게 고백을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실 자이니치(재일 외국인)’라고. ‘하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확인받고 싶기도 하다.

이 영화는 이준기 주연의 영화 플라이 대디(원작명 : 플라이대디플라이)의 원작자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가네시로 카즈키의 소설 「Go」를 원작으로 한다. 그는 이 작품으로 당시 최연소 나오키 문학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외국인 등록증을 늘 소지하고 다녀야 하고 직업 선택에도 제한이 있는 자이니치의 삶. 영화 속 스기하라의 삶은 재일동포 작가인 가네시로 카즈키의 그것과 닮았다. 그래서 스기하라의 이야기는 더 생생하게 우리에게 와 닿는다.

하와이에 가고 싶어 국적을 바꿨다는 아버지의 진짜 마음이 무엇인지 스기하라는 안다. 스기하라가 아직 작은 아이였던 시절 주먹을 쥐고 팔을 뻗어 한 바퀴를 돌아 원을 그리게 한 아버지“그 원 안에 있으면 안전하다. 그래도 주먹으로 그 원을 깨부수고 나올 테냐?”묻는 아버지에게 “가만히 있는 건 시시해. 할래.”라고 대답하는 스기하라. 여러 가지 이름의 족쇄를 물려줄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는 겁 없이 원 밖으로 나오고 싶다는 아들에게 하나의 족쇄라도 풀어 가볍게 해주고 싶었을 것이다. 오랫동안 지켜온 자신의 이념을 버리고 국적의 이름을 바꿔도 그는 변함없이 ‘아버지’다.

무거울 수 있는 낯선 주제를 유쾌하고 통쾌하게 이야기 하는 영화전달하고픈 메시지 또한 꼼꼼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셰익스피어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로 시작한다.
“이름이란 게 뭐지? 장미꽃을 다른 이름으로 불러도 아름다운 향기는 그대로인 것을.”

박혜림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