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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예술을 품은 목욕탕에 가다

[도서]예술을 품은 목욕탕에 가다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5.08.27

군산 이당미술관 첫 번째 프로젝트 「수상한 목욕탕」
햇볕 쨍쨍한 휴가철, 전라북도 군산시의 곳곳이 북적인다. 매력 많은 군산이 최근 블로그 등을 통해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군산공항, 군산항, 군산역 등이 있어 전국 어디서나 접근성이 용이한 덕도 톡톡히 보고 있다.

채만식의 소설 「탁류」의 배경지이기도 한 군산을 들어 흔히 ‘시간이 멈춘 도시’라고 표현한다. 그곳에 가 보면 이유를 알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건물들이 그 모습 그대로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빵집이라는 ‘이성당’에 가면 그 유명한 팥빵과 야채빵을 사려고 한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할 정도의 많은 인파가 줄 서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다. 심은하, 한석규 주연의 아련한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속 그곳인 초원 사진관도 여기서 멀지 않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은 일본식 사찰 ‘동국사’도 근방이다.

모두가 의미 있는 곳이지만 덥고 복잡하다. 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유명지에서 살짝 고개를 돌리자 이제 막 불기 시작한 군산의 문화바람이 훅, 하고 불어온다.

군산시 영화동 19-18번지 이당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필자를 태운 택시 기사가 “옛날 군산은 길 가는 사람들끼리 어깨가 치일 정도로 인구가 많았는데 지금은 엄청시리 줄어 부렀어.”하며 군산의 옛 영광을 회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예전엔 상당히 북적이던 곳이었다는 영화동 이곳에 빈 상가들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이당미술관은 이 같은 빈 공간을 활용한 곳이다. 영화동의 목욕탕이었던 ‘영화장’의 건물을 리모델링해 예술 공간으로 바꾸었다.
커다란 탕이 있었을 1층은 그림, 영상 등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다양한 발걸음들을 표현한 <걷는다>시리즈부터 예전 목욕탕 벽면을 그대로 활용해 작품으로 표현한 <영화장 타일> 등 다채로운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스크린을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 2층을 지나 3층으로 올라가자 과거 객실로 쓰였음직한 방들이 보이고 문에는 각각 작가들의 이름이 쓰여 있다. 작가들이 입주하여 작품 활동을 하는 레지던시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관람객에게 오픈된 3층을 지나 살짝 올라가 본 4층은 작가들의 작업공간이었다. 물감범벅이 된 바닥과 벽, 엄청난 숫자의 붓, 굴러다니는 두 개의 소주병을 보고 나니 전시된 작품들이 왠지 무게감 있게 다가왔다.

수준 있는 작품들과 독특한 전시 공간을 통해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엿보고 목욕탕을 나서는데 작가들과 주변 상인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보인다. 자연스럽다. ‘아, 이거구나.’

그러니까, 이 프로젝트의 멋진 점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 도시의 예술가들이 쳐들어와(?) 시골의 한적함은 한적함대로 누리며 그들만의 문화를 뽐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동을 사랑하고 지켜온 주민들에게 박수를 보내며(수상한 목욕탕 홈페이지에 가 보면 이 공간을 만든 이들이 영화동을 이해하기 위해 얼마만큼 노력했는지, 그 주민들을 얼마나 존중하는지가 느껴진다.) 그 공간에 문화와 예술이 자연스럽게 스며들도록 하는 것이 이당 미술관 <영화동 문화재생 프로젝트>다.

문득 내 고향 제주가 아쉬워진다. 밀려드는 관광객과 쏟아지는 자본으로 겉모습의 변화에 치중되는 제주가 아쉽다. 원래의 주민들보다는 관광객이 중심이 되는 제주의 실태가 아쉽다. 제주를 사랑해 제주에 내려와서도 자신들만의 문화를 형성해 버리고 이방인의 향내를 풍기며 사는 이주민들이 아쉽다. 더운 여름, 마음이 서늘해지는 아쉬움을 가슴 한편에 담고 영화동을 나섰다.

박혜림 객원기자
hyerim10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