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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블러디 선데이』

[영화]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블러디 선데이』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6.04.27

평화를 위한 폭력에 대한 고찰영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영국시인 TS엘리엇의 시 「황무지」의 첫 구절이다. 봄이 움트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시기라는 표현이지만 실제로 4월에는 잔인하리만치 슬픈 일들이 많이 있었다. 여전한 제주의 아픔인 4·3사건부터 4·19혁명아직은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 저린 4·16세월호 참사까지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설레는 가슴에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비단 필자 뿐만은 아닐 것이다.

꺼내놓은 영화 「」는 정작 4월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4월의 가슴 아픈 사건들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같이 연상이 되는 작품이다.
1972년 1월 북아일랜드정당한 시민권을 위해 시작된 평화의 행진이 유혈사태로 번지는 사태가 발생한다. 감독 폴 그린그래스는 사건의 배경에 대한 설명은 최소화하고 시위대의 모습과 영국군의 진압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등장인물들에 대한 캐릭터 혹은 스토리 설정도 거의 없으며 그저 묵묵히 시민들과 공권력 사이의 폭력을 마치 빠르게 이어붙인 사진처럼 보여준다.
필자가 예전에 들었던 법학 강의에서 한 교수가 집회와 공권력그리고 국민에 대해 철학자 홉스의 「리바이어던」의 견해를 빌어 논한 적이 있다. 개인은 자신을 포함한 모두의 안전을 위해 각자가 가지고 있던 폭력 행사권(길을 걷다가 누군가 내 뒤통수를 후려치거나 누군가를 죽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던 아주 먼 과거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을 국가에 양도했으며 이로 인해 국가는 합법적으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은 국가가 정한 법을 지키고 이에 대한 대가로 국가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권리가 생긴다는 이 무언의 계약은 한 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는 순간 자동으로 효력을 발휘한다. 이 암묵적인 계약으로 인해 개인에 대한 공권의 폭력은 사회 평화와 질서유지를 위한다는 타당성을 얻고 공권력에 대한 개인의 폭력은 불법이 되는 것이 ‘법적으로’ 당연하다는 논지였다.

강의를 듣는 내내 들었던영화를 보는 내내 드는 생각‘평화를 위해 행사하는 폭력은 정당한가?’.

묵묵한 스토리 진행 외에 이 영화의 특징은 배경음악이 없다는 것이다.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통해 BGM이 없는 영화를 처음 경험했고 그 때의 묘한 긴장감을 「」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저 사소한 소음그래서 더 강렬한 총소리비명 같은 사람들의 울음이 날 것 그대로 귓속을 파고든다.

영화에서 시위대와 진압군 사이의 마찰이 한참 고조되는 때시위대를 향해 총을 쏘던 한 군인이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고 보고한다. 그런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목표 따윈 없어”. 영화를 보는 중 가장 가슴 서늘해진 장면이었다. 우리 주변에서도 여전히 존재하는무엇이 목표인지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아우성과 폭력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간은 흐르지만 일요일은 반복되고 4월은 내년에도 돌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