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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자, 문화를 추천하다「보고 시픈 당신에게」

[도서]기자, 문화를 추천하다「보고 시픈 당신에게」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6.10.26

인생의 끝자락에서 쓴 아이보다 순수한 편지 「보고 시픈 당신에게」
영화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일본, 2005)에 이런 대사가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생각나지 않는 것을 늘려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잊으며’ 살아가는 걸까. 무엇을 잊어가고 있는지조차 알아차릴 수 없다. 정말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 잊지 않았다면 좋았을 순간들까지도 말이다.

인생의 초반에 글을 익힌 우리는 글을 깨우쳤을 때의 환희를 잊었다. 캄캄한 세상에 불이 탁, 켜진 순간이었을 텐데 우리의 머릿속엔 그 때가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거나 스스로의 감정이나 생각을 제대로 느끼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 때문일 것이다. 인생의 후반에서 그런 순간을 맛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그 순간의 기쁨이 고스란히 기록된 책, 「보고 시픈 당신에게」. 전국의 문해 교육기관을 통해 이제 막 글을 깨우친 비문해 학습자 어르신들의 시와 산문 작품 89편을 모아 엮은 책이다.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요새 흔한 감성팔이에 호소하는 내용에 디자인도 촌스러운 책이라고 생각했다. 대충 훑어보고 말 생각이었는데 몇 작품을 읽고 나자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다. 시인이 시를 쓸 때 한 단어를 쓰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민한다는데, 그리하여 한 편의 시가 탄생하기까지 엄청나게 압축된 긴 시간과 깊은 고뇌가 필요하다는데, 이 책의 모든 작품 하나하나에 7,80년의 세월이 들어있다. 삐뚤삐뚤한 글씨 속에 녹아있는 그 분들의 생 자체가 느껴진다. 그 어떤 작가가 이런 압축미를 표현할 수 있을까.

아이 낳고 출생신고 하러 간 날 죄도 짓지 않았는데 손이 떨리고 얼굴이 빨개졌다는 경자씨, 글공부를 하고 보니 부산 시내가 다 보이는 것 같다는 영남씨,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면 친구야 눈에 뭐가 들어가서 글씨가 안 보여, 노래 좀 찾아달라고 했다는 금례씨, 버스를 혼자 탈 수 있어, 병원도 혼자 갈 수 있어, 식당가서 혼자 밥도 시킬 수가 있어 행복하다는 간난씨...

글을 몰라 쓸 수 없었던 수많은 편지들, 시간이 흘러 받을 이들이 사라진 후에야 쓰인 편지 같은 시들을 읽노라면 지금도 내가 잊어가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순간들이 떠오른다. 보고 싶은 당신에게, 편지 한 장 적어 보내고 싶어진다.
행복하네

김금자

나 어릴 때 친구들과
공부하고 싶었다네
나이 먹고 공부하니
힘이들고 어렵다네
이제라도 배운 공부
엄마에게 쓰려하니
보낼 곳을 모른다네
하늘나라 가셨다네
연애하고 싶은 시절
글 몰라서 못 쓴 편지
칠십대에 쓰려하니
누구한테 보내볼까
늦게라도 배운 공부
즐겁고도 행복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