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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핸드 투 마우스」

[도서]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핸드 투 마우스」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7.02.22

불편하고 피곤하며 무례하고 외로운 가난을 변호하다
필자의 지인 중에 우리나라 어느 대기업의 고객센터에서 전화로 고객을 응대하는 이가 있다. 기업의 정규사원이 아닌 파견직원이다. 어느 날 한 고객이 회사에 컴플레인을 걸어왔다. 지인은 회사의 매뉴얼대로 응대했고 화가 난 고객이 소리쳤다. “당신 직책이 뭐야!”. 일파만파 커진 사건의 끝에 고객이 던진 결론은 이것이었다.

‘알고 보니 파견직 따위였던 여자가 감히 나를 무시해! 당장 사과해, 정신적 피해보상과 함께!’.

그녀가 고객을 무시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일단 차치하고, 파견직이면 자신에게 무조건 머리를 조아려야 한다는(정확하게는 ‘파견직이면 무시해도 된다는’) 그 고객의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왔을까.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때에도 사장과 종업원에게 주문하는 태도가 다른 것일까.

‘가난은 죄가 아니다’라고 하는 옛말은 틀린 것 같다. 가난한 사람들은 머리를 조아리고 사과할 일이 많다.

무언가를 챙길 돈이 없기 때문에 예의가 없거나 무심한, 혹은 무식한 사람이 된다. ‘시간은 돈이다’라는 옛말은 틀림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돈만 없는 게 아니라 시간도 없다. 더 나은 일자리를 알아볼 시간, 더 나은 대안을 검토해볼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가난할 수밖에 없는 선택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가난하다.

이 책의 저자 린다 티라도는 현대 자본주의에서도 그 정점에 있는 미국의 빈민 여성이다. 어느 날 그녀는 화가 났다.

집도 없는 주제에 왜 대책 없이 임신을 했는지 여기저기서 비난받는다. 최저임금을 주는 바(bar)에서 잘리지 않기 위해 늙은 사장의 성희롱을 참아내야 한다.

입 안 가득 망가진 치아 때문에 자신 있게 미소 지을 수 없어서 웃을 일 자체를 피한다. 싸구려 음식과 수면 부족으로 나날이 푸석해지는 피부의 그녀는 아름답지 않기 때문에 취직이 더욱 어렵다.

가난하지 않은 이들이 가난뱅이를 보는 시선과 그들을 대하는 태도에 화가 난 그녀는 이 책을 통해 거친 표현과 블랙 유머로 가난을 변호한다.

쉽게 말하면 이런 뜻이다. 나는 ‘누군가가’ 변기를 닦을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그저, 당신이 변기라는 말 자체에 구역질을 느끼는 대신 그 변기를 청소해 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면 어떠냐는 것이다. 그들이 아니라면 당신 스스로가 변기를 닦아야 할 테니까 말이다. <본문 中>
먼 이국땅에서까지 번역되어 책을 출판하게 된 저자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고 따라서 주변에서 자신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대변하고자 했던 빈곤과 그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사는 땅에도,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자본주의의 시스템 상에서 필연적일 수밖에 없이 ‘상대적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는 과연 누구의 편에 서서 ‘가난’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