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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기자, 문화를 추천하다『캐롤(Carol)』

[영화]기자, 문화를 추천하다『캐롤(Carol)』

by 박혜림 객원기자 2017.03.29

기자, 문화를 추천하다 영화 『캐롤(Carol)』
지인 두 명이서 영화 「캐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한 명은 이 영화가 ‘레즈비언들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라 했고 한 명은 ‘인간적인 호감’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했다.

당시에는 이 영화를 보기 전이라 어떤 의견을 표명할 수 없었다. 영화를 본 후? 둘 다 맞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이성간의 사랑 또한 인간적인 끌림에서 시작하지 않는가.

백화점 점원 테레즈(루니 마라)는 딸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러 온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인상적인 첫 만남을 갖는다.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지만 여러 형편상 백화점에서 장난감 파는 일을 하는 테레즈에겐 결혼을 하자고 조르는 평범한 남자친구가 있다. 얼핏 보기에 특별한 것 없어 보이는 이 여자, 만난 지도 얼마 되지 않은 캐롤은 그녀와의 단순한 대화에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신기한 사람 같아요,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사진작가로서의 꿈을 펼치기 위한 계획을 이야기하는데 다짜고짜 “유럽 여행 가는 건 좀 생각해 봤어?”하고 말하는 눈치 없는 남자친구와는 차원이 다른 우아하고 따뜻한 캐롤.

멈출 수 없고 감출 수 없는 끌림으로 두 여자는 친구가 되고 캐롤의 제안으로 함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남편과의 이혼 소송에서 딸에 대한 양육권을 상실하게 될지도 모르는 캐롤을 위한 여행이다. 여행에서 두 여자는 강한 호감을 넘어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게 되지만 결국 그 사랑으로 인해 헤어짐의 순간이 온다.

삐딱하게 보자면 동성애의 전적이 있는 돈 많고 매력적인 유부녀가 또 다른 매력적이고 평범한 젊은 아가씨를 꼬드기는 이야기를 분위기 있게 표현한 영화다. “하늘에서 떨어진 나의 천사”, “가장 놀라운 선물” 등 달콤한 대사를 늘어놓는 캐롤의 역할을 여성이 아닌 남성이 맡았다면 많은 영화제에서 수많은 부분에 노미네이트된 이 영화에 대한 평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헤어짐의 시간 동안 보다 자신다운 자신을 찾은 테레즈가 캐롤이 손을 내밀었을 때가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캐롤을 찾아가는 전개와 테레즈를 진정한 사랑이라고 이야기하며 청혼하던 옛 남자친구가 테레즈와 헤어진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다른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과는 상반되게 시간이 흐르고도 서로를 찾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모습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영화 「캐롤」. 어찌 보면 흔한 사랑 이야기지만 사랑의 당사자들이 동성이라는 것만으로도 흔한 그것이 아주 생경한 것이 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1950년대 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그 시대를 배경으로 했을 때만 표현이 가능한 수많은 요소들로 인한 이 영화의 아름다운 영상미만으로도 충분히 볼 만하다.

『캐롤』 2015, 미국 외, 감독 토드 헤인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