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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마음 사전-김소연 / 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도서]마음 사전-김소연 / 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by 제주교차로 2020.02.27

한때 여행을 거칠게 다니던 시절에는 세계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자주 하던 말이 있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거에요>라는 말. 수많은 이별을 반복하는 여행자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말은 많은 것이 위안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자주 부르던 그 노래처럼,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온 세상 어린이가 하하하하 웃으면 그 소리 들리겠네 앞으로 앞으로!” 그렇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 서로의 영혼을 보듬어 주고 따뜻한 손을 내밀고 위로를 주고받는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이 둥근 지구 위에서 둥그렇게 서서 손을 잡고 영혼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와 바람을 함께 맞고 떠오르는 태양과 달과 별에 위안을 얻는 둥근 지구별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인류가 겪는 슬픔과 고통의 역사에 주저하지 않고 서로를 보듬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은 결국은 사람이다. 마주잡은 너의 손과 나의 손에서 나누는 온기와 교감. 이 지구라는 곳은 저 혼자 잘 살겠다고 애를 쓴다고 되지는 않는다. 온난화와 기아 문제, 정치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전쟁, 가난과 아픔, 지나친 혐오와 잘못된 뉴스가 한 켠에서 범람하는 이 시대에서 우리는 혼란에 빠지기도 한다. 부메랑처럼 언젠가는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오는 것들. 그것이 사랑이 될 수는 없을까? 그래도 세상이 아름다운 건, 그 사랑의 힘이 더 크기 때문이리라. 그 자리에 인류는 더없는 자비와 온정을 나누며 서로의 자리를 재정립하고 있다. 차츰 겨울의 허물을 벗고 오색찬란할 봄이 오고 있다. 봄은 마치 사랑처럼 따뜻하게 우리의 보금자리에 찾아올 것이다. 은근한 기대와 희망을 품게 되는 시간. 봄을 기다리며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함께 이 계절을 이겨내고 우리는 꽃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 “그러니까 이 시대의 사랑은, 제정신인 상태로 발화하는 살을 깎는 진실, 육체에 대한 갈증과 고민을 함께하는 연대, 결핍투성이인 채로 섬약해져만 가는 마음과의 조우,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것만 같은 삶의 비통, 그 부조리한 통증들에 대한 견딤. 통증이 아닌 채로 연기를 지속해가는 의연의 삶이 아닌, 그 통증에 눈알이 빨개져 눈물을 흘리는 예민함의 총칭이다.
이 모든 통증이 사라질까 두려워, 내 안에 너를, 너 안에 나를 통째로 복사해놓는 것이 사랑이다. 내 안에 복사된 너와 너 안에 복사된 나를 칩처럼 내장한 채로, 불편하게 살아가는 것이 사랑이다. 그때 우리는 신의 기밀문서를 육체에 새긴 첩보원이 된다. 평범하게 살아야만 들키지 않을 첩보원처럼,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해 생활을 하며 과업을 완수하기 위해 스스로를 지켜내야 한다.”
마음 사전 中 P.295 -
쌀쌀한 도시에서
손을 잡고서
나란히 둘이서 걷는 사람만
언젠가 한 번은 봄을 볼 수 있으리.
라이너 마리아 릴케, [봄을 그대에게] 부분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