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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공항에서 일주일을 -알랭 드 보통 /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그 곳

[도서]공항에서 일주일을 -알랭 드 보통 / 이름만으로도 설레는 그 곳

by 제주교차로 2020.03.12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작가 알랭 드 보통은 2009년 여름, 히드로 공항 관계자로부터 공항에서 상주하며 런던 히드로 공항에 관련한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정신없고 바쁜 히드로 공항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권한도 주겠다는 것이다. 저자는 평범하기도 하지만 신비로움으로 무장한 알 수 없는 저 너머의 공항을 출발 게이트와 도착 게이트, 수하물 검색대 등을 오가며 여행과 사람의 일상을 엿본다.
- “보통 좋은 여행이라고 하면 그 핵심에는 시간이 정확하게 맞아 들어간다는 점이 자리하기 마련이지만, 나는 내 비행기가 늦어지기를 갈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야 어쩔 수 없는 척하며 조금이라도 더 공항에서 뭉그적거릴 수 있으니까. 이런 갈망을 다른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적은 거의 없지만, 나는 속으로는 유압 착륙장치가 새거나 비스케이 만에 태풍이 불기를, 말펜사 공항에 안개가 잔뜩 끼거나 말라가 공항의 관제탑에 자체 파업이 벌어졌기를 은근히 바라곤 했다. 이따금씩은 심지어 비행기 도착이 아주 심하게 늦어져서 식사 쿠폰을 받거나, 아니면 더 극적으로, 항공사가 부담하는 비용으로 거대한 콘크리트 크리넥스 상자 같은 곳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를 바라기도 했던 것이다.”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 中 P.10 -
여행을 다니면서 내 항공 마일리지는 지구를 한 바퀴 돌고도 남을 만큼 두둑이 쌓이기 시작했다. 언젠가 지치고 힘들 때 그 마일리지를 가지고 지구 끝,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리라 마음먹었다. 마치 깊은 서랍 속 숨겨둔 작은 상자를 열면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가득 차 있는 것처럼 삶이 지치고 힘들 때 그 항공 마일리지를 보며 세상 든든한 보험처럼 뿌듯했다.
여행의 시작은 공항으로부터 온다. 떠나고 도착해서 첫 시작점을 찍는 곳. 공항의 이미지로 우리는 시작될 미래를 꿈꾼다. 이곳저곳 다니며 비행기를 타던 시절, 나 역시 알랭 드 보통이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내게도 갑자기 찾아올 드라마틱한 행운을 간절히 바랬던 적이 많았다. 이따금 행운을 거머쥔 여행자들의 소식을 들으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는데 내게도 <그 일>이 생기고 말았다! 방콕에서 출발한 에디오피아 에어라인은 6시간을 아프리카 아디스아바바에 경유한 후, 브라질 리우데자이네루 공항에 도착하는 스케줄이었다. 하지만 6시간 경유 후 뜬금없이 도착하게 된 곳은 서아프리카 <토고>였다. 아프리카는 처음이고 이런 일도 처음이라 당황했지만 무려 5일을 머무르며 덤으로 얻은 토고를 여행했다. 비행기 안에서 만난 다섯 명의 미국, 아일랜드의 배낭 여행자들은 누구보다 기뻐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마음을 다해 토고를 즐겼다. 물론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고급 호텔과 음식도 제공 받았다. 마지막 날에는 얼마간의 달러도 따로 두둑이 받았으니 여행자는 손해 볼 일이 없었다. 내 인생에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싶었던 덤으로 얻은 여행지 토고. 계획과 달리 우연히 그곳에 머물며 보고 느꼈던 것들은 그저 좋았다. 마치 어느 시골의 버스터미널처럼 팬이 훅훅 돌아가던 작은 토고의 공항, 익숙지 않는 공항의 냄새, 반짝이는 눈동자로 프랑스어로 봉쥬르를 외치던 사람들. 어쩌면 다시는 못할 내 여행기록의 단편이다.
- “비행이라는 의식은 겉으로는 세속적으로 보이지만, 이 비종교적인 시대에도 여전히 실존하는 중요한 주제 그리고 종교 이야기에 그 주제들이 굴절되어 나타난 모습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다. (중략) 신성하고 영원하고 의미심장한 것들과 관련된 개념들은 암암리에 우리와 비행기까지 동행하여, 안전 지침이 낭독될 때, 기장이 날씨를 알릴 때, 특히 높은 곳에서 지구의 부드러운 곡선을 볼 때 우리의 마음에 스며든다.”
알랭 드 보통, 공항에서 일주일을中 P.115 -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