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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 감정의 물성

[도서]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 감정의 물성

by 제주교차로 2020.03.26

우리는 원하는 것을 보고 느끼기 위해 그 행위에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예를 들어 맛있는 커피를 맛보기 위해 좋아하는 카페로 찾아가 시간과 돈을 지불하고 그것을 얻는 것이다. 지금 내가 가지지 못한 것, 그것을 체험하기 위해 고유의 시간을 지불하고 소비하는 것이다. 커피를 좋아하다보니 아침이면 매일같이 커피콩을 갈고 드립 커피를 천천히 내린다. 마치 하루의 시작을 여는 첫 번째 관문과도 같다.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창문 밖 풍경을 느낀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아침, 그래서인지 이제는 카페를 가기 보단 조용한 집에서 카페 못지않은 분위기를 느끼기도 한다. 로스팅한 커피콩은 더 다양하게 구비되어 지고 다양한 커피 메이커 도구를 구매하기도 한다. 나의 소비를 더함으로써 만족성은 높아지고 정서적으로 안정되며 행복감을 느낀다.

화학을 전공한 신인 작가 김초엽은 <사람들이 어떤 물질을 소유하고 그것으로부터 정서적 욕구를 충족한다면, 어쩌면 그 감정 자체를 소유하고 싶어 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에서 ‘감정의 물성’이라는 글을 썼다. 사람이 물질에 기반을 둔 존재라는 것에 늘 흥미를 가졌고 그래서 화학을 전공한 큰 이유가 있기도 했다고 한다.

- “물성이라는 건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사로잡아요. 왜, 보면 콘서트에 다녀온 티켓을 오랫동안 보관해두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사진도 굳이 인화해서 걸어두고, 휴대폰 사진이 아무리 잘 나와도 누군가는 아직 폴라로이드를 찾아요. 전자책 시장이 성장한다고 해도 여전히 종이책이 더 많이 팔리고, 음악은 다들 스트리밍으로 듣지만 음반이나 LP도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죠. 좋아하는 연예인들의 이미지를 향수로 만들어서 파는 가게도 있고요. 근데 막상 사면 아까워서 한 번도 안 뿌려보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김초엽, 감정의 물성 中 P.205 -
소설, 감정의 물성에서는 우울이나 공포, 증오, 설렘, 집중 등의 감정 자체를 조형화한 제품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정식 런칭 한 달 만에 폭발적인 반응을 이끈다. 돈을 주고 분노나 우울, 증오 같은 감정들이 팔려나가는 현상을 의아해 하는 정하는 우울체를 구입한 여자 친구 보현과의 결혼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보현은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우울체’를 통해 극복하려고 한다. 소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오직 그 감정 자체인건지, 의미가 배제된 감정만을 소비하는 것은 인간을 물질에 속박된 동물로 전락시키는 것이 아닌지, 의미를 추구하는 행위조차도 보다 고차원적인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지 주인공 정하는 의아해한다. 물성은 어떻게 사람을 사로잡는지,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물질에 담고, 그 물질들을 생각하며 모든 행복과 부정적인 감정들도 모두 인간을 인간답게 서게 한다. 냄새, 소리와 공기, 얼룩, 질감, 정적... 정하는 그녀를 그 어떤 언어보다도 그저 실재하는 감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 “소비가 항상 기쁨에 대한 가치를 지불하는 행위라는 생각은 이상합니다. 어떤 경우에 우리는 감정을 향유하는 가치를 지불하기도 해요. 이를테면, 한 편의 영화가 당신에게 늘 즐거움만 주던가요? 공포, 외로움, 슬픔, 고독, 괴로움...... 그런 것들을 위해서도 우리가 늘 일상적으로 하는 일이 아닙니까?”
김초엽, 감정의 물성 中 P.214 -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