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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름 : 서부권

당(堂)은 없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오름 ‘당오름’

당(堂)은 없지만 마음이 편안해지는 오름 ‘당오름’

by 양영태 객원기자 2019.10.14

제주도에는 예로부터 '당 오백 절 오백'이라 했을 만큼 당도 많고 절도 많았었다. 당이 있었던 데서 유래된 ‘당오름’이라는 곳도 송당리, 와산리, 고산리 등 여럿 있다. 그 중에 안덕면 동광리에 있는 표고 473m 비고 118m의 ‘당오름’에는 당이 없었다. 동광육거리에서 금악으로 뻗어 있는 1116번 도로를 가다보면 동쪽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입구에서 보는 오름은 보잘 것이 없어 보인다. 소들을 방목하여 키우는 목장 안에 나지막하게 누워있는 모습은 그저 평범한 풀밭 오름으로 보인다. 목장 안에 있어 탐방로가 뚜렷하게 조성되어 있지는 않지만 커 보이지 않는 소나무들 사이로 뚜렷하게 보이는 오름 능선을 향해 무덤가를 지나면 쉽게 오름에 다가설 수 있다.
오름을 오르다 보면 방목하고 있는 소나 말들을 만난다. 말들은 사람을 보면 사람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온다. 그것도 떼거리로. 멀리서 작게 보이던 말들은 다가올수록 점점 커지고 눈앞에서 떡 마주치면 그 늘름함에 당황 하곤 한다. 워 워 소리를 하며 무심한 듯 조심스럽게 벗어나기에 바쁘다. 하지만 소들은 좀 다르다. 사람들이 다가가도 관심이 없다.
그저 풀 뜯어 먹는 일에만 관심이 있다. 한두 마리가 고개를 들어 “누구세요?”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기만 한다. 그런 소들을 지나 무심하게 능선을 반쯤 오르면 남쪽 기슭에서 동쪽 기슭에 걸쳐 파도처럼 너울거리며 이어지는 작은 봉우리들을 만난다. 어떤 봉우리는 삼나무 방풍림이 둘러져 있고, 어떤 봉우리에는 무덤들이 놓여 있기도 하다. 오름 동쪽자락의 이 언덕들은 떡을 찌는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시루오봉(甑五峰)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무더운 여름에는 숲이 우거진 오름이 좋다. 숲이 햇빛을 가려주고 시원한 기운이 도니 피서를 겸해 탐방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오름 하면 역시 풀밭 오름이다. 풀밭 오름과 숲 오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풀밭 오름이다. 풀밭 오름은 동서남북 사방이 트여있어 주변 경관을 다 볼 수 있고, 오름 능선을 따라 올라오는 산뜻한 바람을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분화구와 알오름 등 오름의 모양을 오롯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방이 풀밭이라 길을 잃을 염려도 없다. 정상인 봉우리를 향해 그저 다가가면 된다. 시야가 트이니 마음이 편하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고민이 없다. 그저 풀밭을 밟으며 마음이 가는 데로 바람이 부는 데로 풍경이 보이는 데로 내디디면 된다.
오르다 잠시 뒤돌아보면 도너리오름 너머로 산방산도 보이고 송악산도 보이고 멀리 가파도도 보인다. 정상에 다가가면 원물오름 자락 너머 우뚝 솟은 한라산 봉우리도 멋있고, 정물오름과 금오름으로 이어지는 북서쪽 기슭에는 잘려버린 곶자왈도 눈에 들어온다. 굼부리를 중심으로 사방의 풍광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오름의 정상에 서면 노을이 질 때까지 마냥 앉아있어도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오름 주변의 목장이 없어지거나 울타리를 치고 소나 말들을 목장 안으로 들인 후부터 풀밭 오름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계절 따라 능선 가득 피어나는 들꽃들을 보며 잔디를 깎아놓은 정원을 걷듯 편안하게 걸을 수 있던 오름들이 이제는 키 만큼 자라버린 풀숲이 되어 길도 찾을 수 없고 꽃도 보이지 않는 오름으로 변해가는 것이다.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을 어찌할 수는 없지만 아쉬움은 언제나 내 몫이 된다.
당오름은 입구에서 보면 완만한 구릉과 봉긋한 정상을 가진 그저 평범한 오름으로 보이지만, 정상에 서면 원형 굼부리가 뚜렷하고, 남동쪽으로 침식된 굼부리 앞쪽으로 작은 둔덕들이 산재해 있는 나름 멋있는 오름이다. 굼부리 안에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진지를 구축했던 자리가 있고, 굼부리 허리부분에도 그들이 파놓은 굴들도 있다. 이 오름은 일찍부터 ‘당오름’이라 하고 한자로 唐岳, 堂岳(당악)으로 표기하였다. 예로부터 신당(神堂)이 있어서 무당은 물론 일반인들이 찾아와 축원하였다고 하여 당오름(堂岳)이라고 하였다고 하나, 唐岳(당악)으로 표기한 것은 또 그것과는 거리가 멀다.

실제로 神堂(신당)이 있었던 자리를 찾을 길도 없고 당에 다니는 사람도 없다. 唐岳(당악)을 나중에 堂岳(당악)으로 잘못 표기하면서 神堂(신당)과 관련시킨 것이 아닐까? 그러나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한 당은 없어도 오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오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