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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름 : 동부권

힐링숲 속에서 녹음의 바다로 빠져보자 '물찻오름'

힐링숲 속에서 녹음의 바다로 빠져보자 '물찻오름'

by 양영태 객원기자 2019.06.13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다. 연두 빛을 띠던 숲은 점점 짙어져 진초록의 녹음으로 바뀌고, 태양빛도 한층 더 따가워져 어느새 그늘을 찾게 되는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 여름에 오름을 오른다는 것은 인내가 필요하다. 더욱이 나무도 번번이 없는 민둥오름을 오르려면 힘이 들기보다도 땀이 먼저 시야를 가린다. 여름에는 그래서 사람들은 숲이 있는 오름을 찾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먼 길을 걸어 오름을 올랐다. 예전에 이 오름을 찾을 때는 임도를 따라 차를 타고 오름 아래까지 이동하여 쉽게 오름을 오르곤 했었는데, 사려니 숲길이라는 이름으로 임도를 숲길로 만들어 오름 진입로의 차량통행을 막아버리고 걸어서 다니라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먼 길을 걸어 오름을 오른다. 힐링숲 속에서 녹음의 바다에 빠져 대양을 횡단해 보자.

사려니 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오름까지 이어지는 약15km의 숲길을 말한다. 해발고도 500-600미터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주변에는 물찻오름, 말찻오름, 살라니오름, 마한이오름, 거린오름, 사려니오름 등과 천미천계곡, 서중천계곡 등이 있으며, 전형적인 온대산지로 자연림과 인공림의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숲가꾸기 사업, 임산물 생산, 산불예방 등의 공익적 관리의 필요성과 숲길을 이용한 산림치유, 산림건강, 자연학습활동에 대한 욕구가 증가하면서 임도의 공익적 다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숲길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천미천은 한라산 해발 1400m 어후오름 일원에서 시작되어 물장올, 물찻오름, 부소오름, 개오름 등을 지나 표선면 하천리까지 25.7km에 이르는 하천으로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제주도 하천의 대부분은 화산지질구조의 특성상 연중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의 형태이나 폭우 시에는 엄청난 급류가 형성되기도 한다.
조천읍, 남원읍, 표선면 3개 읍면의 경계선이 마주치는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물찻오름은 원형 화산체(분석구)로 분화구에 물이 고여서 형성된 호수인 화구호를 가지고 있다. 용암이 지상으로 분출한 곳이 분화구이며 이때, 화산쇄설물인 스코리아(송이)가 분화구 주변에 쌓이면서 원형의 화산체를 만들게 되었다.
물찻오름이라는 이름은 ‘물을 담고 있는 성’ 이라는 뜻으로 성을 의미하는 제주어인 ‘잣’ 이 변형되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정상의 굼부리에 물이 있고 돌이 잣[城]과 같이 쌓여 있다는 데서, 또는 산봉우리가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다는 데서 붙인 이름으로 보인다.
화구호는 오랜 기간에 걸쳐 화산체를 이르고 있는 주요물질인 송이가 부식되면서 점토질로 변해 바닥에 쌓이면서 물이 고이는 것으로, 화구호로 인해 독특한 경관과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예전에는 오름 능선에서도 분화구의 호수가 보였지만 지금은 나무가 울창하여 분화구 안으로 내려가지 않으면 호수를 볼 수는 없다.
오름의 높이가 167m인 물찻오름은 북서쪽 사면은 골이 패여 있으며, 언덕 사이에 대형 화산탄들이 널려있다. 산 위의 분화구는 바깥둘레 1,000m 가량의 깔때기형의 못이 움푹 들어앉아 있다. 제주도의 소화산체 중 몇 안 되는 산정화구호는 연중 물이 차 있다.
사려니숲 에코힐링 체험이라는 행사가 매년 열린다. 에코힐링이란 자연 속에서 치유력을 회복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삶을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 기간에는 오름휴식년제로 출입이 금지된 물찻오름을 오를 수 있다. 자연을 보호하는 것이 출입을 막아 아무도 가지 못하게 하여야 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쪽에서는 오름마다 산책로를 만들어 출입을 장려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출입을 막아 보호한다고 한다. 통행금지로 보호받는 오름이 치유력을 회복하고 있는 것인지, 산책로를 만들어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오름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는 생각하고 말자. 예전에는 성판악휴게소 건너편 표고재배장으로 통하는 숲길을 따라 걸어서 다니던 오름을 이제는 반대쪽에서 똑같은 거리를 걸어서 가니, 과거나 현재나 상황은 똑같은 것이다.
그저 녹음의 숲길이 주는 시원함과 부드러운 초록빛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