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름

오름 : 서부권

어승생악(御乘生岳)

어승생악(御乘生岳)

by 김동일 2008.07.31

오름들의 군주 - 어승생악(御乘生岳)

어승생악은 어리목 등반로 입구에 있는 오름이다. 제주도에 흩어져 있는 360여 개의 오름들은 산(山) 봉(峯) 악(岳) 등의 이름으로 구분하여 불리는데 이를 구분하는 특별한 기준은 없다. 그 중에도 악이 붙어있는 산은 다른 이름이 붙은 산보다 산세가 험할 것이라는 예감이 들게 하지만 특별히 험할 것도 없이 고만고만한 제주의 오름에 악을 붙인 것에 대한 의문은 산을 오르는 와중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어승생이라는 이름은 임금이 타던 말이 태어났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조선 정조 때 산 아래에서 용마가 태어나 조정에 진상되자 어승마가 되었고 그래서 어승생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어승생오름을 오르던 사람들은 임금에 대한 경하의 표시로서 어승생오름에는 악이라는 궁중문자를 썼던 것일까.
해발 1,169m, 산고 350m, 등반 왕복 시간은 1시간여. 보통의 오름들과 다를 것이 없어 보이지만 나무판이 깔려져 잘 다듬어진 등반로를 따라 희안한 이름의 명패들이 붙어있는 갖가지 나무를 구경하며 오르면서도, 쉬이 정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으로 경사가 녹녹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제주도에 제일 큰 몸집을 자랑하는 원추형의 오름, 그 정상에 서서 아래를 굽어보고서야 어승생악에 왜 악이 어울리는 이름인지를 비로소 깨닫게 된다.
어승생악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거칠 것이 없다. 사방으로 펼쳐진 광대한 전경들이 어승생악의 존엄한 위치를 대변하는 듯, 북녘의 바다에서 어승생악을 향해 달려온 풍경들은 어승생악의 발 아래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멀리 수평선은 하늘과 맞닿아 경계선이 없어지고 광활한 파란색 초원은 하늘 위로 아스라이 펼쳐져 있다.
날씨가 좋을 때는 멀리 추자도부터, 동쪽으로는 성산 일출봉까지 서쪽으로는 한림 비양도까지 전망이 가능하다고 한다. 제주도의 절반이 어승생악의 정상에서 조망이 가능한 셈이다.
뒤를 돌아다보면 한라산의 웅장한 장관이 시야를 압도하며 한라산 반쪽의 모습이 통째로 시야에 들어온다. Y계곡의 선명한 모습도 어승생악의 발 아래에 있고 만세동산, 윗세오름, 백록담 정상까지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 어승생악의 코앞에 펼쳐져 있다. 어승생악은 오름이면서도 한라산과 어깨를 겨루고 있는 가히 오름 중의 오름이라 할만하다.
어승생악 정상부근에는 분화구 자리가 있는데 산정호수를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오름 중에 하나이지만 가뭄에는 말라버린다. 꼭대기에는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토치카가 두 개 있는데 건설 당시에는 어승생악 지하요새와 연결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지하요새는 함몰되었다고 한다. 그 빼어난 몸매 덕분으로 어승생악은 역사적인 비극의 증거와 자연유산적 가치를 한몸에 가지고 있는 오름이기도 하다.
어쩌면 어승생악은 보통의 오름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하여 어승생악이라 불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승생악을 직접 대면하고 나면 달라도 보통 다른 것이 아니라 발 아래에 온갖 오름들을 거느린 어승생악은 가히 오름들의 군주라 할만하다.
김동일 tapng9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