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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름 : 서부권

별도봉

별도봉

by 하루이야기 2008.07.31

베리오름 - 별도봉
이름 탓일까? 화북포구를 지나 별도봉을 향해 가파르게 불어오는 바람소리에는 창칼을 벼리는 소리가 숨어 있는 듯 하다. 비록 마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꼿꼿하게 서걱이는 억새 숲에도 쇳소리가 섞여 있다.
멀리로 부두를 떠나 유행가처럼 오가는 연락선과 고깃배가 출렁거리고, 만경창파 굽어보는 등대. 고개를 들면 다시 우뚝 솟은 한라산과 점강(漸降)하는 오름, 급기야 국립제주박물관의 독특한 지붕이 목전이다.
그 옛날 탐라의 군사들은 별도봉 인근에서 칼을 갈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바닷가 오름은 ‘벼리다’에서 파생된 ‘베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왜구의 노략질이 잦았던 시절에는 별도봉 근처에 목책이나 쇳조각, 사금파리 등 갖가지 살상용 도구를 매설해놓고 봉우리쪽으로 유인해 몰살시키곤 했다는 것이 제주도의 원로시인 이용상 선생의 전언이다.
별도봉은 뛰어난 풍광과 더할 나위 없는 산책로를 데이트 코스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여행객들에게는 지나치기 쉬운 장소이다. 우선 입장료가 없는 까닭에 각종 관광안내도에 상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워낙에 다양하게 분포한 각종 명승지나 관광지와 제대로 견줄 기회조차도 잡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은 별도봉의 일출이 등을 맞댄 사라봉의 낙조에 버금가는 장관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성에서 밀리는 듯한 감이 없지 않은 것은, 아무래도 낙조를 보는 일이 일출을 보는 것보다는 덜 부지런해도 가능하기 때문은 아닐까.
산이든 바다든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곳을 식별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곳에 ‘자살바위’가 존재하는가를 따져보는 것이다. 바다 쪽으로 유려하게 휘어지는 곡선을 따라 가다가 낙차 크게 꺾어지는 곳이 자살바위다.
生과 死는 이렇듯 하늘과 땅 차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바위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고, 그 반대는 이제는 오를 수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살해할 수밖에 없는 그 절박함을 산목숨으로 어찌 짐작할 수 있으랴.
다만 별도봉을 이루면서 피어나는 색색의 꽃들도 생사를 걸고 겨울을 견뎠다는 것. 함부로 지닌 모든 것들 다 놓아버리고 끝끝내 견뎠다는 것.
<글, 사진 권영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