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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름 : 서부권

윗세오름대피소

윗세오름대피소

by 미녀나라 2008.07.31

하늘 아래 1번지- 윗세오름대피소
한라산 등반은 일출 2시간 전부터 가능하고 일몰 전까지는 한라산 공원을 벗어나야 한다. 제주도 면적의 8.3%를 차지하는 한라산국립공원의 덩치에 걸맞게 한라산에는 5개의 대피소가 있으며 그 중에 진달래밭대피소, 윗세오름대피소 두 군데가 유인대피소다.
진달래밭대피소는 성판악 등반로 해발 1,500고지에 있고, 영실 등반로 해발 1,700고지에 있는 윗세오름대피소는 남한 최고봉 한라산 정상의 언저리에 자리잡은, 그야말로 남한 최고 고지에 위치해 있는 하늘 아래 1번지 주거지이다. 여기를 찾아갈 때 거쳐야 하는 1,100도로도 한국의 포장도로 가운데 가장 높은 도로에 해당한다.
매점이 있는 10여 평의 건물이 대피소의 얼굴이다. 지하에는 발전실이 있었으나 지금은 기름탱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뒤에 있는 20여 평이 조금 넘는 건물에는 대피소와 숙소가 있고 대피소는 평상시에는 창고로 쓰여진다. 건물 옆에는 태양광 발전시스템이 설치되어 있으나 전기가 들어온 후로는 정지되었고, 건물 뒤로 자연발효로 처리되는 15동의 간이식 화장실이 있다. 이게 구름 위에 떠있는 거창하지만 약소한 윗세오름대피소의 전 목록이다.
그리고 또 하나, 마당에 설치되어 있는 무인 카메라가 있다. 24시간 대피소 마당을 비추는 무인 카메라의 화면은 한라산 국립공원 홈페이지에서 실시간으로 구경할 수 있다.
매점에서 팔리는 발군의 인기 품목은 단연 컵라면, 많이 팔릴 때는 하루에 대략 1,000여 개 이상 팔린단다. 그러나 컵라면의 매출은 대피소의 기쁨이자 슬픔이다. 바로 식수 때문이다.
대피소의 총 근무자는 3명, 2일 근무 1일 휴무로 2명이 상주한다. 이들의 애로 사항이 부식까지 짊어지고 한라산 정상부근까지 올라가는 출퇴근으로 생각했다면 오판이다. 가장 큰 애로는 다름 아닌 고립감과 식수 부족이었다. 그래서 세수조차도 마음 놓고 하지 못한다.
모노레일로 물품을 공급 받기는 하지만 모노레일의 공급으로는 컵라면에 소요되는 식수를 감당할 수 없기에 식수는 노루샘에서 직접 길어온다. 동절기에는 이나마도 어려워진다. 그래서 기후가 변덕스러워 눈이라도 내리면 인간 세계와 단절되는 한라산의 외로운 산꼭대기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식수 확보는 절박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단 2명이 근무하는 여기에서 이들에게 가장 공포스런 방문객은 쓰레기를 많이 남기는 수학여행단이고, 가장 황당스런 방문객은 화장실 갔다와서 손 씻을 물을 요구하는 등산객이다. 물을 물 쓰듯 하는 대한민국의 이야기는 해발 1,700고지의 여기서는 먼 나라의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서 등산객들이 하산할 때는 남은 식수를 대피소에 기증하고 갔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밤새 신들이 뛰어 놀았을 것 같은 선작지왓을 지나 구름도 쉬어가는 윗세오름에까지 도착했다면 하루쯤은 사바세계의 거추장스러운 관습들은 버리고 신선처럼 살아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등산객들에게 전해주고 싶어진다. 여기는 하늘 아래 1번지 윗세오름대피소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