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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름 : 서부권

절간 옆 시원한 약수터, 절물오름

절간 옆 시원한 약수터, 절물오름

by 제주 교차로 2010.09.20

옛날에 이 자리에 절이 있고, 그 옆에는 약수터가 있었기 때문에 ‘절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제주도 각지의 지명들이 한자와 한글, 옛말과 현대어, 준말과 늘인 말 등을 버무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 온 것은 일찍이 듣고 보아온 바이지만, 절간 옆에 물이 난다고 해서 대뜸 ‘절물’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데에서는 참 기가 막힐 지경이다. 내로라는 작명가, 카피라이터를 모두 동원하더라도 이 오름을 가리켜 절물이라고는 이름 짓지 못할 것이다.
아름드리 삼나무 숲을 돌아 오름으로 가는 오솔길 위로 햇살이 떨어진다. 등짝이 후끈 할 정도로 내리쬐는 햇살에 복수초 꽃이 노랗게 여물었다. 산삼이나 불로초처럼 사람의 눈을 피해 뿌리를 내리는 귀한 꽃이라고 믿어왔던 생각에 쐬기라도 박겠다는 듯 노란 꽃 무더기는 지천으로 깔려 있다.
도도록하게 부풀어 오른 해토머리 흙 위에는 복수초 뿐만이 아니라 앙상한 모가지를 길게 내민 바람꽃도 피어 흔들리고 있다. 복수초의 수북한 잎과는 정반대로 꽃도 잎도 여리디 여려 한 줄 바람에도 몸 전체를 크게 뒤집는다. 해사한 낯빛이 오래 앓고 난 소녀의 그것 같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험하지도 가파르지도 않다. 그저 산책하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올라도 숨이 차지 않는다. 나무계단을 설치하고 동아줄을 이어놓아서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다만 간밤에 내린 비로 타이어를 길게 찢어 엮은 발판은 진창이다. 쉬운 길에 넋을 놓고 걷다가는 철퍼덕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겠다.
약수암에서 시작해 약 0.8km의 산길의 절반에 접어들자 100년은 못 돼도 적어도 80~90년은 살았을 때죽나무가 뿌리를 드러내고 오솔길 옆으로 드러누워 있다. 오름을 찾는 사람을 위해 베풀어 놓은 과잉친절의 흔적이다. 드러누운 가지 사이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매달아놓은 새를 위한 집도 보인다. 인간이 휘두른 폭력의 대가로 편하게 오름을 오르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차라리 몸이 좀 힘들더라도 마음이 편한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기껏해야 해발 700m도 채 되지 않는데다가 산길 또한 1km에 미치지 못하는 기생화산,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20분이면 떡을 칠 길을 위해 서슴없이 삽을 뽑아 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 역시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조금 전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에 욕을 퍼부었으면서도 그 폭력이 마련한 동아줄에 의지해 산길을 간다. 이런 게 인간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남이 하면 폭력이고, 내가 하면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식의 파렴치.
북사면을 올라 능선에 이르자 질척이던 길은 어느새 사라지고 햇살만 고봉으로 퍼 담아 봉우리를 쌓아 놓은 듯 뽀송한 길이 나타난다. 뻗고 싶은 만큼 가지를 뻗고, 자라고 싶은 만큼 발돋움을 한 활엽수 군락이 무성한 잎을 자랑하며 서로의 몸에 손을 대고 있다.
드물게 전망대를 마련한 정상에서는 견월악을 넘어 저 멀리 우뚝 선 한라산은 물론이고 남으로는 다랑쉬오름을 끼고 성산포, 북으로는 거친오름을 비껴 구제주 시가지가 손바닥처럼 훤하게 눈에 들어온다. 어딘가에 오른다는 것은 무언가를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옅은 안개로 인해 신비감이 감도는 각각의 봉우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선에 든 수행자 같다. 어느 때 돌연 구름이 몰리고 천둥이 울어 선방을 나서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 고즈넉한 분위기가 몇 주만 이어진다면 금세 한 소식 들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새순처럼 돋아나리라.
흙길 다 밟고 지나온 길 되짚어 내려와 오른 쪽 ‘숲 속의 마을’로 길을 잡으면 약수터가 나온다. 드문드문 커다란 물통을 들고 물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로 미루어 보통은 넘는 물인 모양이다. 이 또한 귀한 삼다수일 터인데 한 바가지 들이켜고 나면 인간만을 위한 욕심 다 씻기어 내려가 우리의 가슴 속에도 복수초가 피고 바람꽃이 피고 때죽나무가 자랄 수 있다면 좀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