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이미지

오름

오름 : 서부권

왕이메

왕이메

by 제주소리 2008.07.31

왕의 오름, 왕이메
저렇게 휘파람을 분 적이 있었다. 간절하게, 딱 한 번만이라도 뒤를 돌아봐달라고 마음속으로 매달리면서, 휘파람을 불던 때가 있었다. 끝내 아무도 돌려세우지 못한 채 청춘의 주옥같은 시간들은 흘러가고, 이제는 입술을 오므려 소리를 만든다 해도 예전의 그 발랄함도 패기무쌍도 찾을 수가 없다.
겨우내 궁금했던 안부라도 묻겠다는 듯 휘파람새가 발길을 이끈다. 그의 부리에는 옥으로 만든 푸른 피리라도 물려 있는지 간간이 입술을 오므릴 때마다 새파란 하늘에 고운 목청이 날아가 박히는 것 같다. 먼 옛날, 사흘 밤 사흘 낮을 도와 치성을 드렸다는 폐 왕조 탐라 임금의 쓸쓸한 기도가 허공을 떠돌며 저와 같은 노래가 되는 것은 아닐까.
편안하게 열린 밭길을 가자니 밭을 둘러놓은 비닐 그물에 노루인지 고라니인지가 걸려 죽어있다. 파리한 몸에 내장으로 통하는 커다란 구멍이 열려 있고 파리떼가 들끓는 것이 꽤 오래 전에 절명한 듯 하다. 나자빠진 저 짐승이야말로 온몸을 바쳐 보시를 하는 셈이고 파리를 비롯한 온갖 날 벌레들은 뜻하지 않은 은총에 감격하며 후손을 싸지를 것이다.
생명이라는 것은 이렇게 돌아간다. 비닐 그물을 든 인간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저런 보시도 잔치도 없었을 것이지만 어찌됐든 인간도 자연이 만들어낸 한 종족이 아닌가. 어쩌다 도구를 잡을 줄 아는 재주가 생겨남에 따라 불가피하게 타 종의 생물 제위께 폐를 끼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방편인지라 전적으로 손가락질 당하기에는 나름의 피치 못할 사정이 있지 않겠는가.
평탄한 임도를 따라 걷다가 가시낭 우거진 사이로 뚫어놓은 자드락길을 택해 오르면 끙끙거리는 발밑에 오랑캐꽃이 지천이다. 뿐만이 아니라 별꽃에 노루귀에 복수초에다 연둣빛으로 새순을 만들어 올리는 둥글레에 이르기 까지 ‘이것이 바로 봄이 왔다는 명백한 증거’라며 눈앞에 들이민다. 그래 봄이다.
봄볕을 직빵으로 맞아 이미 잎을 펼치기 시작한 동남쪽과는 달리 북서쪽 비탈에는 아직까지 잎을 마련하지 못한 활엽수들이 맨몸으로 우거져 있다. 그러나 오늘 같은 봄볕 아래서는 이 같은 풍경도 잠깐일 것이어서, 앞으로 사나흘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겨우내 갈무리해 둔 저마다의 푸른 옷을 꺼내 입느라 부산할 것이다. 저 각각의 야윈 몸뚱어리 어느 곳에 초대형 옷장이 들어 있어 계절에 맞춰 푸르고 붉은 옷들 꺼내 입는 것일까.
왕이메는 삼백 육십여 오름 중에서 가장 깊은 분화구를 가지고 있어서 아무리 큰 눈으로 내려다보더라도 한 눈에는 다 들어오지 않는다. 더욱이 빽빽하게 들어찬 활엽수 군락과 소위 곶자왈로도 불리는 덤불 지대로 인해 그저 골 깊은 어느 한 자락으로만 보이기도 한다.
이 웅장하고 깊은 분화구로 들어가는 일은 만만해 보이지 않는다. 급하게 주저앉은 경사는 내려가는 일도 그렇지만 반대편으로 올라올 일은 더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다행히도 주 분화구 외에도 소형 분화구 두 개를 더 가지고 있어서 배 나오고 다릿심 약한 사람도 짧게나마 분화구 맛을 볼 수 있다.
산책을 하듯이, 그러나 군데군데 도사린 가시낭을 피해가며 느린 걸음을 옮겨 가자니 난데없는 돌무더기가 길게 이어져 있다. 동행한 오름 전문가의 말로는 지금으로부터 꼭 60년 전 봄날에 벌어졌던 난리통에 산으로 밀려온 사람들이 최후의 방어선 삼아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문득 초입에서 만났던 노루의 사체처럼 생과 사의 경계를 보여주는 듯 하다. 아래쪽이 산 자의 몫이었다면 이 경계의 위쪽, 물러설 자리도 얼마 남지 않은 위태로운 산정은 속절없이 죽어간 자의 땅이었을 것이다. 60년 전의 죽음에도 가슴이 저리다며 한 떼의 까마귀가 우짖고 간다.
작은 분화구는 안온하다. 여름이면 습지로 변한다는 이 곳에도 연둣빛이 감돌고 있다. 유난히 많은 잔가지를 뻗은 나무에도 안개처럼 희미하게 푸른 휘장이 드리워져, 그 안으로 들어간다면 한 줌 한 줌 봄을 퍼내는 요정이라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하산 길은 삼나무 숲이다. 길을 잘못 잡는 바람에 만나게 된 행운인데 몸에 좋다는 피톤치드라는 물질이 마구 쏟아질 것 같은 느낌이다. 이미 따가워진 햇살을 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데,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마치 이 땅의 뱃살을 밟는 듯 폭신폭신 하다. 울울창창 들어선 삼나무 덕에 자주 발부리를 잡아끌던 관목 숲에 시달리지 않아 한결 가벼운 하산이다.
오름에서 벗어나는 길은 소떼를 위해 일궈놓은 초지다. 멀리 한라산을 배경으로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싸고 싶은 만큼 싸대며 한무리의 소떼가 어울려 있다. 한라산과 오름과 초원. 이만큼 제주의 풍경을 명쾌하게 정리한 풍경이 또 있을까? 풀린 걸음으로 돌아 나오는 뒷모습에다 대고 옛날처럼 휘파람새가 울고 운다.
<글, 사진 권영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