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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름 : 동부권

절물오름

절물오름

by 절세미녀 2008.07.31

절간 옆 약수터, 절물오름
옛날에 이 자리에 절이 있고, 그 옆에는 약수터가 있었기 때문에 ‘절물’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제주도 각지의 지명들이 한자와 한글, 옛말과 현대어, 준말과 늘인 말 등을 버무려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이름을 만들어 온 것은 일찍이 듣고 보아온 바이지만, 절간 옆에 물이 난다고 해서 대뜸 ‘절물’이라고 이름 지었다는 데에서는 참 기가 막힐 지경이다. 내로라는 작명가, 카피라이터를 모두 동원하더라도 이 오름을 가리켜 절물이라고는 이름 짓지 못할 것이다.
아름드리 삼나무 숲을 돌아 오름으로 가는 오솔길 위로 봄 햇살이 떨어진다. 겨우내 벼르고 별렀던 듯 등짝이 후끈 할 정도로 내리쬐는 햇살에 복수초가 한꺼번에 꽃을 피워 올렸다. 눈 속에서만 피는 줄 알았는데, 꽃이랍시고 피워놓고 보니 느닷없이 눈이 내렸던 모양이다.
산삼이나 불로초처럼 사람의 눈을 피해 뿌리를 내리는 귀한 꽃이라고 믿어왔던 생각에 쐬기라도 박겠다는 듯 노란 꽃 무더기는 지천으로 깔려 있다. 그동안 보아온 하얗게 눈을 뒤집어 쓴 1월의 달력사진은 보호본능을 자극하기 위한 쇼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도도록하게 부풀어 오른 해토머리 흙 위에는 복수초 뿐만이 아니라 앙상한 모가지를 길게 내민 바람꽃도 피어 흔들리고 있다. 복수초의 수북한 잎과는 정반대로 꽃도 잎도 여리디 여려 한 줄 바람에도 몸 전체를 크게 뒤집는다. 해사한 낯빛이 오래 앓고 난 소녀의 그것 같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험하지도 가파르지도 않다. 그저 산책하듯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올라도 숨이 차지 않는다. 나무계단을 설치하고 동아줄을 이어놓아서 누구라도 쉽게 오를 수 있도록 해놓았다. 다만 얼었던 땅과 쌓였던 눈이 녹느라 타이어를 길게 찢어 엮은 발판은 진창이다. 쉬운 길에 넋을 놓고 걷다가는 철퍼덕 봉변을 당하기 십상이겠다.
약수암에서 시작해 약 0.8km의 산길의 절반에 접어들자 아름드리나무들이 뿌리째 뽑혀있다. 지난해 제주도 전체를 뒤집어 놓았던 태풍의 영향이겠거니 생각하다가, 무슨 태풍이 사람의 길을 따라서 나무를 뽑아놓았는가에 생각이 다다르자, 아뿔싸 뽑힌 게 아니라 뽑아 놓은 것이라는 걸 알겠다. 오름을 찾는 사람을 위해 베풀어 놓은 과잉친절의 흔적이다.
100년은 못 돼도 적어도 80~90년은 살았을 때 죽나무도 뿌리를 드러내고 오솔길 옆으로 드러누워 있다. 드러누운 가지 사이에는 누군가가 만들어 매달아놓은 새를 위한 집도 보인다. 인간이 휘두른 폭력의 대가로 편하게 오름을 오르면서도 마음이 편치가 않다. 차라리 몸이 좀 힘들더라도 마음이 편한 것이 훨씬 나을 것 같다. 기껏해야 해발 700m도 채 되지 않는데다가 산길 또한 1km에 미치지 못하는 기생화산, 빠른 걸음으로 걷는다면 20분이면 떡을 칠 길을 위해 서슴없이 삽을 뽑아 들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행동 역시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전제하에서 ‘인간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오를수록 쌓인 눈은 두텁고 언 땅은 더 깊이 질척거린다. 조금 전에 자연에 대한 인간의 폭력성에 욕을 퍼부었으면서도 그 폭력이 마련한 동아줄에 의지해 산길을 간다. 이런 게 인간의 본질인지도 모르겠다. 남이 하면 폭력이고, 내가 하면 인간을 위한 것이라는 식의 파렴치.
북사면을 올라 능선에 이르자 질척이던 눈길은 그야말로 봄눈 녹듯 녹아 없어지고 햇살만 고봉으로 퍼 담아 봉우리를 쌓아 놓은 듯 뽀송한 길이 나타난다. 뻗고 싶은 만큼 가지를 뻗고, 자라고 싶은 만큼 발돋움을 한 활엽수 군락이 잎을 내기 전의 가벼운 몸으로 서로의 몸에 손을 대고 있다. 조금만 더 햇살이 뜨거워지고 마른 가지 끝으로 물이 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저마다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기를 쓸 것이다.
드물게 전망대를 마련한 정상에서는 견월악을 넘어 설봉(雪峰)으로 우뚝 선 한라산은 물론이고 남으로는 다랑쉬오름을 끼고 성산포, 북으로는 거친오름을 비껴 구제주 시가지가 손바닥처럼 훤하게 눈에 들어온다. 어딘가에 오른다는 것은 무언가를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옅은 안개로 인해 신비감이 감도는 각각의 봉우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선에 든 수행자 같다. 어느 때 돌연 구름이 몰리고 천둥이 울어 선방을 나서게 될지는 모르지만 이 고즈넉한 분위기가 몇 주만 이어진다면 금세 한 소식 들었다는 소문이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새순처럼 돋아나리라.
눈길 흙길 다 밟고 지나온 길 되짚어 내려와 오른쪽 ‘숲 속의 마을’로 길을 잡으면 약수터가 나온다. 드문드문 커다란 물통을 들고 물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로 미루어 보통은 넘는 물인 모양이다. 이 또한 귀한 삼다수일 터인데 한 바가지 들이켜고 나면 인간만을 위한 욕심 다 씻기어 내려가 우리의 가슴 속에도 복수초가 피고 바람꽃이 피고 때죽나무가 자랄 수 있다면 좀 좋으랴.
<글, 사진 권영오/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