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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름

용눈이 오름

용눈이 오름

by 하루이야기 2008.07.31

은 완만하고 부드럽다. 마주 선 다랑쉬 오름의 가파르고 날이 선 듯한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산담을 두른 묘지를 지나며 시작되는 용의 몸은 와룡이라는 또 다른 지명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꽃송이가 잘린 채 오름을 덮고 있는 억샛잎이 마치 용의 비늘이라도 되는 듯이 번쩍거린다. 용도 똬리를 트는지는 모르겠으나 용눈이 오름의 전체적인 형상은 용의 눈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분화구를 중심으로 몸통이 두텁게 겹치고 있다.
높이 보다는 넉넉한 넓이를 보여준다. 가시낭을 비롯한 몇 몇 관목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식생도 없이 오름 전체가 초지다. 바닥에 착 달라붙어서 보랏빛꽃을 피운 쑥부쟁이나 소똥을 뒤집어 쓰고도 노란빛으로 하늘을 연 개민들레는 여느 오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뭐니뭐니 해도 용눈이 오름의 포인트는 유려하게 휘어지는 곡선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여성성을 띠고 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초입에서 바라보이는 겹쳐진 두 개의 봉우리는 한창 물이 오른 여인의 가슴을 연상시킨다. 배경으로 깔린 하늘과 더해 파란 이불을 깔고 누운 듯하다. 뿐만 아니라 보는 각도에 따라서 엉덩이의 복숭아를 연상시키는 것 같기도 하고, 용의 눈이라는 부분도 치골을 향해 미끈하게 뻗어 내려가는 배꼽 언저리 같기도 하다.
용의 등허리를 밟고 조금 더 올라가면 분화구를 정면으로 바라 볼 수 있다. 일출봉을 뒤로 하고 아래로 뚝 떨어지는 커브가 장관이다. 마치 백자 접시 위에 일출봉을 올려놓은 것 같다.
제주는 일품요리 같은 개개의 풍경도 아름답지만 원근을 겹치거나, 좌우를 더해서 보면 풀코스의 정찬처럼 더욱 각별하다. 용눈이처럼 보잘 것 없는 높이에서도 낮게 엎드린 제주의 풍경은 고스란히 드러난다. 계절상으로 겨울이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푸른 지대가 눈에 넘치도록 들어온다. 아마도 월동 배추며 무를 재배하는 곳이리라. 아니면 서서히 꽃대를 내밀기 시작하는 유채 밭일는지도 모른다.
용눈이는 삼백예순을 헤아리는 오름 중에서 가장 마음을 여유롭게 하는 봉우리 중의 하나이다. 일단 높이에 대한 부담이 없으므로 굳이 운동화로 갈아 신을 것도 없이 한 바퀴 휭하니 둘러 갈 수 있다. 단지 아쉬운 점이라면 연속된 폭발로 분화구의 형상이 제대로 동그란 것이 아니라 정말 용의 눈처럼 약간 길쭉하게 찢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 덕분에 자연이 빚어놓은 최고의 곡선을 감상할 수 있으니 세옹지마에 전화위복이다.
용눈이의 인근에는 무덤이 많다. 살아 있는 우리가 올라 마음이 편하게 무디어 지는 곳이 망자에게 또한 이승의 생각들 다 내려놓고 편히 쉴만한 장소인 모양이다. 단 하루도 쉬지 않는 매운 바람 속에서도 마른 풀들을 비집고 새롭게 초록의 싹을 내미는 것들이 보인다. 가시낭이라고 불리는 찔레도 빨간 열매를 맺기는 했지만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다.
북동 사면(斜面)을 따라 내려가면 방목지다. 오름 전체가 소똥으로 덮여 있기는 하지만 겨울바람 탓인지 아니면 그나마 저지에는 아직까지 뜯어 먹을 만한 풀들이 자라기 때문인지 평지에만 모여 있다. 색깔도 다양해서 누렁이부터, 흰둥이, 검둥이, 얼룩이까지 종류별로 다 있다. 꽃등심을 만들기 위해 1m가 채 안 되는 줄에 묶여 일생을 보내는 녀석이 있다고 하는데, 고기 등급이야 어떻게 됐든지 간에 하루를 살다가 죽더라도 자유로운 모습이 보기에는 훨씬 더 좋다.
제주에서는 놓아기르는 소가 많은데 흑돼지의 명성에 가려 그다지 한우에 대해서는 알려지지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흑돼지 전문점은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나 한우전문점은 웬만해서는 눈에 띄지 않을뿐더러, 토박이 주민들도 이렇다할 식당 이름이나 브랜드를 대지 못한다.
오르는 길이 가파르지 않았으니 내려가는 길이라고 해서 급할 리는 없다. 다만 분화구 주위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는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그렇고, 산책이라고 말하기도 뭣 하다. 정히 서운하다면 한 바퀴 더 돌면 되는 것이지만 어쩐지 좀 싱겁다. 그러나 이것은 육체를 혹사 시키려는 가학적 자기본능에 따른 것인지도 모른다. 용눈이에 가면 몸을 움직이기 보다는 눈과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