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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이야기>함덕 바다는 여기서 봐야지 '서우봉' 편

<오름 이야기>함덕 바다는 여기서 봐야지 '서우봉' 편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6.22

내가 일하는 곳은 함덕이다. 해가 좋은 날이면 에메랄드 바다색이 수채물감 풀어놓은 것처럼 번져있는,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을 매일 보면서 근무한다. 그러다보면 그게 바다인지 하늘인지 뭐인지 모르겠고, 그냥 피곤하다는 생각이 감정을 지배해버린다.

아예 바다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퇴근한 적도 있다. 남들은 휴가 내고 비행기 타고 와서 보는 이곳에 큰 감흥을 못 느낄 정도로 익숙해진 내게도 그 풍경이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울 순간이 있다.

함덕 바다를 완벽하게 감상하는 장소라 자부하는, 서우봉에 올라 바라봤을 때 그렇다.

서우봉은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의 함덕해수욕장 동쪽 바다에 접해 있는 기생화산이다. 남쪽의 남서모와 북쪽의 망오름, 두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올레길 안내 표지판의 글에 따르면, ‘물소가 뭍으로 기어 올라오는 듯한 형상이라고 하여 예부터 덕산으로 여겨져 왔고-물소 서(犀)자를 써서 서우봉이라 부름-산책로는 함덕리 고두철 이장과 동네 청년들이 2003년부터 2년 동안 낫과 호미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바다를 옆에 끼고 오르는 둘레길은 4월경이 가장 좋다. 길을 따라서 유채꽃이 만발하기 때문이다. 유채꽃 명소로 알려져 있는 성산 광치기해변이나 산방산에서 굳이 인당 천 원씩 내고 치열하게 포토존 싸움을 하기보다 이곳을 추천한다. 유채꽃 시기를 놓쳤다면 또 다른 기회가 있다. 요즘 같은 6월이면 여러 색의 접시꽃을 만날 수 있다.

조금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다 운동부족을 탓하며 거친 숨을 몰아쉴 때쯤 팔각정이 나타난다. 여기서 물 한 모금 마시며 내려다보는 바다도 일품이지만 아직 진짜 명소는 나오지 않았다. 둘레길로 계속 갈 수도 있고, 좀 더 깊숙이 서우봉으로 들어가는 산책로와 숲길도 선택할 수 있도록 갈래가 나 있다.
숲길로 들어서면 갑자기 어두워진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빼곡하다. 비교적 완만한 숲길을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면 망오름에 다다른다. 새해 첫날 일출제가 열리는 이곳은 잔디정원처럼 평평하게 펼쳐져 있다. 제주도 오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묘가 있지만 무섭다는 생각보다, 전망 좋은 곳에 잠들어 계신 고인이 부러워진다.

이 정상보다 경관이 뛰어난 곳이 낙조전망대다. 개인적으로 꼽는 서우봉의 백미다. 이제는 제주도의 대표 관광지가 되어 거의 매일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함덕 해변을 고즈넉한 산 위에서 감상하고 있으면 이곳을 아는 것만으로도 특권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아래로는 초원 위에 방목된 말들이 풀을 뜯고 있어 그림을 완성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이름이 자랑하는 낙조 때는 아직 가보지 못했다. 가끔 노을이 정말 붉게 물드는 날이 있는데 그 시기에 맞춰서 다시 방문해보려고 벼르는 중이다. 일터로서가 아닌, 쉼터로서의 함덕에서 내 생애 최고의 일몰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