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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이야기>쉽게 허락되지 않는 곳 '거문오름' 편

<오름 이야기>쉽게 허락되지 않는 곳 '거문오름' 편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7.06

나는 조천읍 선흘2리에 살고 있다. 마을 이름을 대었을 때 대번에 알아듣는 사람이 많지 않을 정도로 작고 조용한 동네다. 그래서 설명을 위해 주로 애용(?)하곤 했던 랜드마크가 '무려 '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거문오름이다.

집보다 녹지가 더 많은 이곳이 차와 사람으로 북적이는 때가 1년에 한 번 열리는 제주세계자연유산 국제트레킹 기간이다. 세계자연유산 등재 기념으로 2008년 시작된 이래 10회째를 맞은 올해 행사는 7월 1일부터 10일까지 진행되고 있다.
거문오름은 여타 오름들처럼 아무 때나 오를 수 있는 곳이 아니다. 1일 450명으로 탐방인원을 제한하고 있는데, 탐방 희망 전 달 1일부터 선착순으로 예약을 받는다. 탐방출발 시간도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로 정해져 있고, 매주 화요일은 휴식의 날이기 때문에 빠듯한 일정으로 여행을 오면 거문오름을 보기 어렵다. 게다가 샌들 착용, 양산이나 우산, 스틱, 아이젠 사용을 금지하며 훼손방지에 신경을 쓰고 있다.

이렇게 귀한 오름을 트레킹 기간에는 사전예약 없이 무료로 개방한다. 트레킹 코스는 분화구 내부와 능선을 도는 '태극길'(10km)과 거문오름에서 용암이 흘러간 길을 따라 벵뒤굴을 거쳐 다희연까지 걷는 '용암길'(5km)이 있는데, 용암길은 이 기간에만 한시적으로 개방되고 있다. 올해는 벵뒤굴에서 흐린내생태공원으로 가는 '진물길'(6km)도 신규코스로 개설됐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368개의 기생화산 중 하나인 거문오름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이유는 이 분화구에서 흘러나간 용암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벵귀굴 등 10여 개로 이루어진 거문오름용암동굴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용암이 협곡을 만들며 북동쪽 해안으로 흘러간 길이가 14km나 된다고 한다.

탐방로 입구에서 거문오름 정상까지는 30분이면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요즘 같은 수국철에는 꽃다발처럼 풍성한 수국과는 또 다른 매력의 산수국이 짙은 보랏빛으로 여기저기 피어있다. 정상에서는 음산하다 싶을 만큼 우거진 숲으로 ‘검은’ 분화구가 내려다보여, 전체적으로 성스러운 기운을 가진 오름이라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힘에 부치면 정상만 찍고 다시 입구로 내려가면 된다. 총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좀 더 분발해 분화구 코스를 돌면 일본군이 태평양전쟁 당시 만들어놓은 갱도진지와 제주민들이 숯을 만들었던 숯가마터 등 역사적인 유적을 만날 수 있다.

사실 이 동네로 이사 왔던 1년 반 전에는 배달이 가능한 피자나 중국집은커녕 변변한 슈퍼 하나 없이 숲에 둘러싸여 있다는 게 참 서글프기까지 했다. 하지만 사람과 자연이 이렇듯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곳이 흔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커지자 오히려 감사하다. 우리 마을, 아니 제주의 사라지지 않는 유산이 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