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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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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하지는 않았지만 손님맞이에 연일 바쁜 오름 ‘당산봉(당오름)’

원하지는 않았지만 손님맞이에 연일 바쁜 오름 ‘당산봉(당오름)’

by 양영태 객원기자 2019.09.11

언젠가 무슨 영화에서 본,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지고 있는 나라의 드넓은 풍력발전단지에는 인가가 보이지 않았다. 사람이 살지 않는 산맥과 분지의 황무지에 5천대가 넘는 바람개비를 설치하여 전기를 만들어내는 광경은 가희 장관이었다. 제주도에서도 신재생에너지라고 하여 풍력발전단지를 만들고 있다. 단지라고 하기는 참 왜소하지만 태양광발전과 함께 미래의 에너지라 하여 연구와 개발이 한창이다.
그 중 대표적인 곳이 신창해안도로일 것이다. 그것도 풍광이라 하여 드라마와 광고촬영지로 유명해 지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언젠가 풍차 근처에서 사진을 찍을 일이 있어 잠시 머무는 동안에 느꼈던 그 섬찍한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마치 비수가 심장을 도려내는 듯 한 그 소리를.
나만의 생각일수도 있겠지만 그 소리를 매일 들어야 하는 지역주민의 일상은 어떨지가 궁금하였다. 그 유난히 아름다운 해안도로를 따라 용수리로 향하면 포구 넘어 무인도인 차귀섬이 보이고, 차귀섬을 바라보고 있는 당산봉을 만난다.
바다 쪽으로는 파도에 깎여 수직의 절벽을 이루고, 육지 쪽으로는 백로가 날개를 펴서 알을 감싸고 있는 모습으로 다가오는 오름이다. 어느 오름이나 그러하겠지만 보는 방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당산봉의 산세는 오름을 오르기 전에 먼저 보는 즐거움을 가져다준다.
전체적으로 볼 때 동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이어지는 사면은 둥그스름하면서도 가파르며 곳곳에 암석층이 겉으로 드러나 있고, 북서쪽 사면은 바다 쪽으로 해안절벽을 이루며, 북쪽으로는 분화구 내부에 새로운 화구구인 알오름이 생기며 말굽형으로 벌어진 이중식 화산체이다. 풍수설에서는 동쪽에서 바라보면 늙은 스님이 북을 두드리는 형상이고, 남쪽에서 바라보면 신선이 앉아 책을 읽는 형상, 북쪽으로는 백로가 날개를 펴서 논밭에 내려앉는 형상이라고 한다.
제주섬의 서쪽 끝, 한경면 용수리에서 고산리로 이어지는 해안에 바다를 뚫고 나온 덩치 큰 당산봉은 다시 폭발하여 알오름을 만들며 북쪽으로 커다란 말굽형 분화구를 열어 놓았다. 표고 148미터, 비고는 118미터이지만 둘레는 4킬로미터가 넘는 커다란 오름이다. 처음 얕은 바다에서 수중 분출된 후 육상 환경에서 분화구 내부에 새로운 화구구(알오름)가 생긴 것이다. 우도면의 쇠머리오름, 성산읍의 두산봉, 표선면의 매오름, 대정읍의 송악산 등 이들 대부분이 그렇듯 당오름도 북쪽 해안 쪽은 심한 파식작용으로 원형을 잃어 가고 있다. 해안절벽 노두에서는 잘 발달된 층리구조를 볼 수 있고, 북서쪽 벼랑에는 해식동굴인 '저승굴'이 있다.
오름의 분화구에는 알오름을 중심으로 사방에 경작지가 조성되어 있어 여러 갈래의 농로와 군사시설로 통하는 길이 나있다. 그 길과 길을 이어 오름의 능선을 따라 도는 탐방로가 있고, 탐방로는 소나무 숲과 풀밭 등성이를 지나며 해안절벽과 섬 풍경, 고산평야와 한라산 풍경 등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오름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그 못미처에 전망대가 조성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고산리 평야와 수월봉으로 이어지는 해안풍경은 제주의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육지의 평야를 닮은 고산평야에는 밭과 밭을 경계하는 돌담이 없다.
해안에서 불어오는 하늬바람은 거칠게 없이 평야를 내달리고 당산봉의 허리를 감은 뒤 그 기세를 몰아 한라산을 넘본다. 당산봉에도 예전에 봉수대가 있어 북으로 판포봉수, 남동으로 모슬봉수와 교신했었다고 한다. 당산봉 남동쪽에서 남서쪽으로 흐르는 내를 민간에서는 '자귀내' 또는 '자구내'라고 하고, 이 '자귀내'를 "탐라지도" 등에 '遮歸川/자귀내, 자구내'이라 표기하였다. '자귓벵듸'를 遮歸坪代로 표기한 것으로 보아, 遮歸는 '자귀' 또는 '자구'의 차자 표기라 할 수 있다. 이를 '차귀'라 읽는 것은 오늘날의 한자음을 읽은 것이다. 민간의 '자귀내'를 고려할 때 '자귀'로 읽는 것이 타당하다. '
자귓벵듸'와 '자구내' 가까이에 있는 오름이라는 데서 '자귀오름'이라 한 것이다. 이 오름에 '자귀당'이 들어서면서 '당산오롬'이라고도 불렀다. 오늘날은 '당산오롬'은 잊혀지고 그냥 '당오롬'으로 더 알려졌다.
요즘은 지역마다 각종 길을 조성하느라 분주하다. 오름의 탐방로도 그렇지만 해안을 따라서 또는 산기슭을 따라서 아니면 사찰과 사찰을 연결하거나, 성지를 연결하는 길도 있다. 당산봉을 용수리 해안 쪽인 생이기정을 통해 오르거나 자구내포구 쪽에서 오르다 보면 여러 가지 탐방로 안내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제주올레길 안내가 있고, 세계지질공원 트레일 코스 안내도 있고, 천주교 순례길 안내판도 보인다. 오름 하나에 무려 세 개의 길이 만들어진 것이다. 오름은 원하지 않았겠지만 사람들의 욕망에 따라 서로 다른 길들이 만들어지면서 당산봉은 연일 손님맞이에 분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