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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오름 : 동부권

한가위가 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달맞이 오름 ‘다랑쉬오름’

한가위가 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달맞이 오름 ‘다랑쉬오름’

by 양영태 객원기자 2019.09.26

한가위, 추석하면 떠오르는 것들은 벌초, 귀성길, 차례상, 시골집 등 많지만 보름달과 달맞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다. 사람들은 왜 추석이 되면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까? 한 달에 한 번씩 일 년이면 열두 번이나 나타나는 보름달이지만 유독 추석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비는 걸까. 옛날 해가 지고 어둠이 내리면 깜깜해지는 밤은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밤을 환하게 비춰주는 보름달은 그 당시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또한 농경사회에서 둥그런 보름달의 모습은 햇곡식과 햇과일의 모양을 닮아 소생과 생명력의 상징물로 여겨왔다고 한다. 그래서 곡식을 수확하는 계절의 보름날에 조상에게 제를 지내 풍성한 수확을 감사하고 다음해 농사의 풍년과 못다 한 소원을 기원했을 것이다.
구좌읍 세화리에 있는 표고 382.4m, 비고 227m인 다랑쉬오름은 제주도 오름의 원형으로 여겨진다. 대부분의 오름들이 비대칭적인 경사를 가진데 비해 동심원적 등고선의 가지런하고 반듯한 원추체에 깊은 굼부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오름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원초적인 형태이다.
지도상으로 보면 거의 원형으로 된 밑지름이 1013m, 오름 전체 둘레가 3391m에 이르는 큰 몸집에 산 자체의 높이가 227m나 되며 둥긋한 사면은 돌아가며 어느 쪽으로나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빼어난 균제미에 있어서는 구좌읍 일대에서 단연 오름의 여왕이라고 할 수 있다.
대부분의 학자들이 다랑쉬오름의 이름과 달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산봉우리의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 하여 도랑쉬, 달랑쉬라 부른다고 하며, “저 둥그런 굼부리에서 쟁반 같은 보름달이 솟아오르는 달맞이는 송당에서가 아니면 맛볼 수 없다.”고 자랑거리로 여기기도 한다.
오름의 전 사면 아래쪽에는 삼나무가 조림되어 있다. 그래서 오름을 오르는 입구 역시 삼나무 숲 가운데로 시작된다. 잘 만들어진 나무계단을 따라 오름으로 들어서면 조금은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지 않고 끝나는 삼나무 숲을 벗어나면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는 내내 펼쳐지는 주변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오름의 경사가 급해 숨은 헐떡이지만 걸음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들면 사면을 타고 올라오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발아래 펼쳐지는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방금 힘들게 지나온 길조차 잊혀버릴 정도이다. 특히 가을의 오름길에는 보라색, 노랑색, 빨강색, 하얀색 등 원색을 자랑하는 갖가지 들꽃들이 피어 있어, 꽃 한 송이 따서 책갈피에 끼우던 젊은 날의 감성이 소환된다. 물론 나이가 든 사람들만의 생각일지는 모르지만.
가파른 경사를 지그재그로 오르다 보면 어느새 능선의 초입에 다다른다. 능선은 가운데 굼부리를 중심으로 오름을 커다랗게 휘돌고 있고 북쪽의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왼쪽이나 오른쪽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른쪽 능선을 따라 정상을 오른다. 뷰가 좋아서 일 것이다. 산정부에는 크고 깊은 깔때기 모양의 원형 분화구가 움푹 패어있는데, 이 화구의 바깥둘레는 약1,500m에 가깝고 남·북으로 긴 타원을 이루며, 북쪽은 비교적 평탄하고, 화구의 깊이는 한라산 백록담의 깊이와 똑같은 115m라 한다. 정상에 서서 굼부리를 내려다보면 “분화구가 마치 달처럼 둥글게 보인다.”는 마을사람들의 이야기가 실감이 난다. 등 뒤에서 바람이라도 한차례 흔들고 지나가면 깊고 둥그런 굼부리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굼부리 바닥에는 잡풀이 무성하고 산정부 주변에는 듬성듬성 나무가 자라고 있는데 남쪽 능선에는 제주도에서 가장 넓은 소사나무 군락지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다랑쉬오름은 능선을 따라 돌며 보는 풍경이 탁월한 오름이다. 오름 동쪽 아래에 예쁜 모습으로 누워있는 아끈다랑쉬와 그 너머의 성산, 주위의 오름들, 그 오름들 너머 멀리 보이는 한라산 정상과 그 자락. 비자림의 천연림과 송당리 마을 풍경, 오름과 오름 사이에 아기자기 놓여있는 밭담들 사이의 밭들. 추석날 보름달을 보기 위해 늦은 오후에 오름을 오르면 보름달이 뜨기 전에 한라산 자락을 넘어가는 아쉬운 일몰의 풍경까지. 추석이 다가오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름, 다랑쉬오름에서 보름달을 보며 소원을 빌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