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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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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젓한 숲속 길에서 만나는 단풍 ‘노로오름’

호젓한 숲속 길에서 만나는 단풍 ‘노로오름’

by 제주교차로 2019.11.14

단풍의 시작은 산 전체의 20% 가량이 물들었을 때를 뜻하며, 단풍의 절정은 전체의 80% 가량이 물들 때를 말한다. 100%에는 20%가 모자라지만 그래도 절정이다. 한라산 단풍은 백록담 정상을 시작으로 점차 해발고도가 낮은 곳으로 내려온다. 각 지점마다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는 조금씩 다르나 한라산의 단풍을 만끽할 수 있는 곳으로는 만세동산에서 바라보는 어리목계곡과 1천500∼1천600m 기암절벽이 어우러진 영실기암, 용진각과 왕관릉 일대가 손꼽힌다. 한라산 단풍은 구상나무, 주목, 적송 등 상록수와 갖가지 단풍나무가 어우러져 여러 색깔로 은은하게 물들며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한반도 북쪽지방에서 부터 시작되는 단풍은 10월말이 되어서야 한라산에 닿는다.
가을이 되면 아름다운 단풍을 보기위해 전국의 산에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런데, 한라산의 단풍은 그 운치가 떨어진다고들 한다. 단풍이 드는 낙엽활엽수가 적고 또 붉은색으로 물드는 나무가 적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도 단풍철 주말이 되면 어리목과 영실을 향하는 등산객들로 한라산 횡단도로는 몸살을 앓는다.
한라산에 올라 발밑에 펼쳐지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산행도 좋겠지만, 붐비는 등산로가 아닌 호젓한 숲길을 걸으며 단풍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떠나는 것은 어떨까. ‘노로오름’을 향하는 숲 입구를 들어서면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갖가지 단풍나무가 어우러진 낙엽 쌓인 길이 우리를 반겨준다. 숲길은 떨어진 낙엽의 아삭아삭한 맛을 품은 체 기억나는 시 구절을 떠올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시를 흥얼거리며 낙엽 쌓인 길을 무심히 걷다 문득 올려다 본 숲은, 철렁하며 가슴에 멍이 들듯 붉은 빛으로 가득하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노로오름을 가는 길은 여럿 있다. 천백고지에서 숨은물벵디를 거쳐 가는 길도 있지만 국립공원지역이라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바리메오름 임도를 따라 안천이오름을 지나 이르는 길이 있고, 한라산둘레길 천아숲길을 따라 오르는 길도 있다. 늘 푸른 상록수와 단풍이 든 낙엽활엽수가 가득 차 있는 천아숲길을 따라 1시간여를 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를 지나 삼나무 둘레길을 조금 가면 오름 입구를 만난다. 오름의 주위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오름의 형태를 가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정상에 서면 붉은오름과 삼형제오름은 물론이고 그 사이로 영실의 기암괴석과 멀리 한라산 정상의 뷰가 좋다. 서쪽으로는 멀리 산방산을 비롯하여 가파도와 마라도도 보인다.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이 가을의 노로오름 정상은 자라나는 나무들의 키 만큼씩 가리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은 괜찮은 풍광을 보여준다.
오름이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봉우리와 말굽형으로 패인 굼부리와 함께 기슭에 습지까지 품고 있다 보니 길이 여기저기로 나있다. 까딱하다가는 길을 잃을지도 모르니 주의해야 한다. 가을 단풍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요즘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노로오름은 오름의 형상이 노루와 같다는데서 붙였다고도 하고, 노루가 많이 살았던 오름이라는 데서 붙였다고도 한다. 오름의 동북쪽으로 딸려 있는 서너 개의 작은 봉우리들을 ‘족은노로오름’이라고 구분하여 부르기도 하는데, 굳이 별개의 오름으로 구분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리 힘들지 않은 숲길과 그 길을 가는 내내 반기는 단풍들이 있어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노로오름을 오르면 일주일의 피로를 풀기에는 충분하다. 단풍이 드는 낙엽활엽수가 적고 또 붉은색으로 물드는 나무가 적어서 운치가 떨어진다는 한라산 단풍이지만, 숲속으로 발길을 트면 단풍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느끼고도 남는다. 운치가 없는 아쉬움이 아니라 고운 모습을 뒤로 하고 내려가야 하는 아쉬움이 더 많은 숲길을 뒤로 하고 발길을 돌린다. 정다움과 함께 쓸쓸함을, 푸르름과 함께 황혼의 멋을 즐길 수 있는 숲길 단풍여행은 그렇게 또 하나의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