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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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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노을을 품고 있는 ‘느지리오름’

멋진 노을을 품고 있는 ‘느지리오름’

by 양영태 객원기자 2019.12.25

지는 해를 바라보며 차분한 마음으로 한해를 돌아본다.
연말이 다가오면 사람들의 마음이 조급해진다. 한해를 보내며 지키지 못한 약속은 없었는지, 해가 가기 전에 꼭 마무리해야 할 일이 있지는 않은지, 미처 끝내지 못하고 해를 넘겨야만 하는 일은 없는지 노심초사한다. 돌아보면 아쉬움으로 가득한 마음 한 곳을 그나마 위로의 색깔로 채울 수는 없을까. 지는 해를 바라보며 올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희망을 가득 담고 돌아올 수 있는 오름을 올라보자.
느지리오름은 한림읍 상명리 북서쪽 약 1킬로미터 지점에 있는 오름이다. 월림리에서 명월리 방향으로 나 있는 명월성로(1120번 지방도)를 따라 가면 길가에서 바로 오름 입구에 이르고, 비고가 85미터로 그다지 높지 않고 탐방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비교적 쉽게 오를 수 있는 오름이다.
전체적으로 서쪽 사면은 둥그스름하고 가파르지만 그 밖의 사면은 느슨한 몇 가닥의 등성이가 흘러 아랫도리에 군데군데 풀밭을 품고 있다. 오름은 깊이가 78미터에 이르는 깔때기 모양의 큰 분화구와 깊이가 50여 미터의 작은 분화구가 나란히 이어져 있는 2개의 원형분화구를 갖고 있다.

오름의 높이가 85미터인데 분화구의 깊이가 78미터이면 아주 깊은 분화구를 가진 오름이지만 분화구 안에는 소나무, 상수리나무, 보리수나무, 자귀나무 등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덩굴식물들이 서로 엉켜있으며 길도 없어 접근하기가 어려워 그 깊이를 직접 느낄 수는 없다. 하지만 탐방로를 따라 가다 보면 수풀 사이로 보이는 깊은 분화구의 모습을 볼 수 있고, 두 개의 분화구 사이에 다리처럼 나있는 탐방로에서도 그 깊이를 가늠해볼 수 있다.
느지리오름의 탐방로는 독특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정상 전망대를 종점으로 크게 3갈래의 탐방로가 있는데 지도상에서 그 탐방로를 연결하면 ‘태아(胎兒)’의 모양이라는 것이다. 오름 입구에 커다란 안내판이 서있는데 그 안내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생명과 사랑의 길, 느지리오름 산책로』“하늘에서 내려다본 느지리오름은 ‘태아(胎兒)’의 형상을 한 산책로를 품고 있습니다. 느지리오름이 품은 특별한 산책로는 제주의 모든 생명을 잉태하고 무한한 사랑으로 지켜내는 위대한 자연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길은 일부러 새로 낸 길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었던 옛길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산책로입니다. 그 길의 전체 모양이 신비롭게도 태아를 닮아있어, 느지리오름은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어머니의 품처럼 안전하고 편안한 느지리오름의 산책로를 통해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위대한 자연이 전하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사랑의 소중함을 진하게 체험해보기 바랍니다.”

느지리오름(晩早岳)은 봉수대가 있었던 오름이라 망오름 이라고도 하지만, 고유의 이름은 느지리오름이다. 느지리는 상명리의 옛 이름이다. 19세기 중반에 明月[멩월], 晩早[느지리/느조리], 孝洞[쉐동] 등 3개의 마을이 있었는데, 이후에 ‘느지리’와 ‘쉐동’이 결합하여 ‘웃멩월[上明]이라 하였다. 마을 이름을 ’느지리‘라 부른 것은 ’느지리오름‘ 가까이에 있는 마을이라는 데서 비롯되었다는 주장이 있고, 오름 이름이 느지리오름이라는 것은 느지리 마을에 있는 오름이어서 그렇다는 주장도 있다. '느조리, 느지리'의 뜻은 확실하지 않지만, 오름 이름이 먼저인지 마을 이름이 먼저인지 굳이 따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오름의 입구를 들어서면 돌과 시멘트로 포장된 탐방로를 만난다. 솔잎이 떨어져 다소 미끄럽기도 한 포장길을 지나면 야자매트길이 나오고, 매트길이 계속 이어지는가 싶으면 나무계단 길도 나오고, 다시 발바닥 지압길도 나온다. 나무계단 길은 듬성듬성 썩어가는 곳도 있지만, 탐방로를 이루는 여러 가지 재료들을 밟으며 오르면 재미있기도 하다.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은 여러 번 오르내린 뒤 정상에 있는 전망대와 만난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금오름 뒤로 우뚝 솟은 한라산이 북쪽으로 뻗어 내려 중산간 들판을 이루며 바다로 이어져 있고, 볼록하게 올라선 섬의 서쪽 자락 너머로 산방산과 모슬봉도 보인다. 부쩍 커버린 소나무 가지 너머로 협재 앞바다 비양도가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겨울의 해질 무렵 느지리오름에서는 서쪽 해안선 너머 차귀도를 붉게 물들이는 멋진 노을을 감상할 수 있으며, 노을을 감상하고도 10여분이면 오름을 내려올 수 있다. 마을에 가까이 있어 친근하고, 높지 않아 산책하듯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느지리오름에서 1년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차분하게 한 해를 돌아보고 다가오는 새해에 대한 희망을 품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