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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in&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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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in&人- 건축가 이타미 준 편

제주 in&人- 건축가 이타미 준 편

by 한지숙 자유기고가 2017.04.06

바람의 소리에 화답하다 건축가 이타미 준
거친 듯 부드러우면서도 화려한 듯 단아함을 동시에 품은 제주는 보는 이들에게 깊은 예술적 감성을 선사한다. 제주의 이러한 선물에 아름다운 건축물로 화답한 이가 있다. 건축가 이타미 준(1937~ 2011)이 바로 그다.

그는 ‘유동룡’이란 한국이름을 가진 재일교포다. 부모님 때문에 도쿄에서 태어나 시즈오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그의 의식 속에는 언제나 뿌리에 대한 강한 탐구가 있었다. 평생 일본귀화를 하지 않고 일정기간마다 외국인 등록을 위해 열손가락 지문 찍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조국에 대한 애착이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 자연과의 조화를 중시하면서 마음의 풍요를 추구했던 한국의 전통미는 자신의 온전한 정체성을 찾기 위한 탐구의 대상이었다.

혼자 한국을 여행하며 고건축, 조선민화,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에 빠져 수집하기 시작했다. 1970~80년 사이 한국을 오가며 지은 책들과 고미술품들은 그가 평소 얼마만큼 한국문화에 애정을 갖고 탐미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열정은 그의 말년, 제주도에서 건축을 통해 절정을 이루게 된다. 어찌 보면 당연한 귀추일지도 모르겠다.

제주는 이타미 준에게 시즈오카에 이은 또 하나의 고향이었다. 바람이 살아있는 곳, 제주의 숨결을 그대로 담아서 40여 년간 이어온 건축의 정점을 제주도에 이루어 놓았다.

핀크스 비오토피아 단지를 비롯하여 수․풍․석 미술관, 두손미술관, 포도호텔, 방주교회는 자연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건축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는 그의 대표적 건축물로 우리에게 사랑받고 있다.

최소한의 인공적인 손길로 자연 재료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을 중요시 했던 이타미 준의 건축사상이 오롯이 녹아있는 건축물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풍․석 미술관은 변화무쌍한 제주의 자연환경에 건축이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만든 공간이다. 우리가 알고 있던 기존의 미술관 혹은 박물관처럼 화려한 외관이나 어떤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고 이곳을 방문한다면 적지 않게 당황할 수도 있다.

전 세계 어디에도 그 예가 없는 새로운 의미의 제3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에서는 물과 자갈의 아름다움을 보고, 바람에서는 바람의 소리를 듣게 하려는 것으로 이는 다름 아닌 자연을 수집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 이타미 준의 건축의도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다. 그래서 그의 건축물은 갇혀 있던 우리의 시간들을 풀어놓고 천천히 가야 할 느림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의 또 다른 건축물 ‘포도호텔’은 위에서 내려다보면 지붕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연결된 모습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제주 오름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내부 또한 유연하게 객실을 배치하여 창문을 열면 그대로 액자가 되는 제주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물에 비치는 독특한 외관으로 물 위에 떠 있는 착각을 일으키는 그의 작품 방주교회도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건물의 지붕은 서로 다른 세 가지 아연합금으로 모자이크 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하늘과 햇살을 아름답게 투영하고 있다.

재일교포2세라는 경계에서 누구보다도 더 치열하게 정체성을 찾아 한국의 미를 구현하고자 했던 이타미 준.

‘사람의 생명, 온기를 작품의 밑바탕에 두는 일,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땅의 지형과 풍토, 바람의 노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일’이 건축의 방식이라고 했던 그의 음성이 제주의 바람 속에서 들리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