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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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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의 고사리

제주의 고사리

by 라라 여행작가 2017.05.03

앞마당에서, 길가의 버스 정류장에서, 산에서, 들에서, 동네 밭에서 봄은 자신을 뽐내는 다양한 풀들의 색에서 한 발자국 더 가까이 우리에게 찾아온다.

제일 먼저 제주의 봄을 알리며 여기저기 흐드러지게 꽃망울을 터뜨리는 유채, 짧은 기간 찬란하게 피고 사라지는 벚꽃나무, 파랗게 바람에 너울지는 청보리, 아기자기하게 예쁜 꽃을 피우는 귤꽃 나무, 마을 곳곳의 매화나무, 푸른 잎을 건강하게 잉태하는 마을의 팽나무, 작은 새순을 잉태하며 봄의 따스한 기운으로 한 발자국 다가오는 풀잎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가만가만 들여다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런 찬란한 봄이 찾아올 때쯤 고개를 들고 쑥쑥 자라는 제주의 고사리. 바야흐로 제주는 고사리 철이 찾아왔다.

3월 중순부터 길게는 5월 말까지 제주 사람들은 고사리 채취를 위해 한껏 무장하고 산과 들로 고사리를 찾으러 다닌다.

그 유명한 고사리 채취는 ‘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말어!’ 란 말이 절로 나올법하다. 봄이 되면 이따금 제주 곳곳의 자연경관 속에서 <고사리 채취 중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하세요>란 플랜카드를 심심잖게 볼 수 있다. 실제로 해마다 고사리를 채취하러 갔다가 길을 잃어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아니, 얼마나 고사리 찾아 삼매경에 심취했길래 고사리의 유혹?에 넘어간단 말인가.

고사리 찾아 삼만 리를 떠난 아낙처럼 나 역시 고사리의 유혹에 넘어가 하루 반나절을 정신이 쏙 빠질 정도로 고사리 채취에 중독되어 버렸다. 가시넝쿨과 이런저런 너저분한 잡풀들 사이에서 자세를 꼿꼿하게 쳐들고 서있는 도도한 고사리를 발견할 때면 반가움과 환희의 손놀림으로 누가 가져갈세라 똑! 끓어 들고 온 가방에 하나둘 집어넣는다.

4월이 되면서 유독 비가 자주 내리는데 제주에서는 이를 두고 “고사리 장마”라고 불린다. 누군가 똑 끓어간 고사리는 자주 내리는 4월의 비를 흠뻑 맞고 다시 그 자리에서 고개를 들고 쑥쑥 자라나는 시기다. 넝쿨과 잡풀들 사이에서 쑥쑥 올라오는 고사리를 찾아 사람들은 가방 한가득 고사리를 담아 돌아온다.

이게 또 얼마나 재미있는지 <고사리 중독>이라고 불릴 정도다. (고사리 채취의 재미를 일컫는다.) 오동통한 제주의 고사리는 자태도 곱고 위풍당당하시다. 고사리밭이 어디에 있는지 며느리에게도 알려주지 않는다는 고사리 철이 다가오면 제주의 사람들은 고사리를 찾아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몸을 낮게 낮추고 여기저기 살펴보면 비로소 보이는 아름다운 고사리, 집집마다 마당에 널어둔 고사리는 어느 누구의 밥상으로 찾아갈까?

들기름 두르고 가볍게 볶아 만든 고사리 반찬은 왜 이리 맛있던가! 중국산 고사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제주 고사리는 전국에서도 맛나기로 유명하다. 어렸을 적 엄마가 밥숟가락에 얹어 주던 고사리 반찬. 요번 고사리는 육지에 계신 엄마에게 따뜻한 봄 볕 바람에 잘 말려 한 움큼 보내드려야지.

4월의 고사리 장마가 지나가고 있다. 올해는 좀 더 재미지게 놀아봐야겠다. 오일장에 찾아가 고사리 모자와 장화를 구입해야지. 나도 제주 할망들처럼 전문적인 고사리꾼이 될 테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