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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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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레와 싸울 것인가, 살 것인가

벌레와 싸울 것인가, 살 것인가

by 이현진 객원기자 2017.09.21

지난 밤 내내 왕달팽이 괴물에게 쫓기는 꿈을 꿨다. 제주도 중산간마을 목조주택에 살며 많은 벌레를 만나고 싸워왔지만, 하다 하다 달팽이까지 가세할 줄은 몰랐다.

요 며칠 하루도 빼놓지 않고 밤마다 세면대에 달팽이가 출현하고 있다. 수건으로 발을 닦고 나온 엄마의 종아리에 거무죽죽하고 기다란 생물체가 쩍하고 붙어 있던 것이 첫 대면이었다. 거머리인 줄 알고 떼어내려 거의 탈춤을 추듯이 뛰었는데, 껍데기도 없이 풀어헤쳐진 민달팽이었다. 그것도 어른 검지만한 크기라, 어릴 적에 달팽이 꽤나 잡고 놀았던 내가 맨손으로 만지기도 꺼려졌다. 그래도 죽이고 싶지는 않아서 휴지에 물을 묻혀 현관문 밖 풀숲에 버렸는데, 이 짓을 매일 하다 보니 휴지로 산을 쌓을 기세다.

도대체 달팽이들이 어디서 들어오나 살펴보다가 기함을 했다. 세면대 사이 약간의 빈틈을 손전등으로 비춰보니... 맙소사, 벽에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다! 급한 대로 인터넷 검색을 했다. 맥주로 유인을 하면 냄새를 맡고 몰려와 스스로 몸을 던져 익사한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래서 '달팽이'라는 이름의 호프집이 많았나, 쓸데없는 생각도 해보며 시원하게 한잔 준비해 놨다.

실제로 몇 분 지나니 달팽이가 접근했다. 누가 달팽이를 느리다고 했나. 맹렬한 기세로 빠르게 맥주가 담긴 컵을 기어오르더니 냄새만 맡고 다시 벽으로 숨어들었다. 풀숲에 있는 친구들까지 다 불러 모아 술파티를 벌이는 게 아닌가 걱정하며 잠이 들었는데, 그렇게 악몽을 꾼 것이다. 날이 밝은 지금까지 익사자(?)는 한 마리도 없다. 엄마와 나는 지금쯤 집 주변의 모든 달팽이들이 이쪽으로 행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움에 떨면서도 맥주를 치우지 못하고 있다. 아, 당분간 골뱅이무침은 쳐다보기도 싫다.

달팽이 이전에는 손바닥만 한 나방, 거미, 지네, 먼지다듬이와 지난한 전투를 벌여왔다. 샤워하다가 검은색 머리끈이 떨어져 있어 주웠더니 지네였다는 지인의 거짓말 같은 일화를 우리도 체험했다. 아침에 눈을 떴더니 지네와 같은 베개를 베고 누워있었다는 누군가의 일화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며, 잠자리에는 꼭 호랑이연고를 온몸에 바르고 잔다. 그나마 거미나 지네는 눈에 띄어서 잡기라도 하지, 점 같은 먼지다듬이와 진드기들은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어서 박멸이 거의 불가능하다. 빨아놓은 속옷 위를 스멀스멀 기어가는 하얀 점을 보고야 말았을 때의 그 절망감과 소름이란.

제주도가 워낙 습한데 우리 집은 사방에 풀이 많은 중산간, 벌레와 함께 살기 딱 좋은 환경이다. 자연과 어우러져 살고 싶다며 도시를 버리고 와서는 자연의 일부를 퇴치하는 데 온 시간과 정성을 쏟고 있는 내 꼴이 환상만 좇은 것 같아 우습다. 벌레와 싸울 것인가, 벌레와 함께 살 것인가. 이것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