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봄 손님
나의 봄 손님
by 라라 여행작가 2019.04.04
코끝이 알싸했던게 엊그제 같은데 날씨가 제법 많이 풀렸다. 아침이 되면 거실의 창문과 손님의 방으로 봄 햇살이 맹렬하게 쏟아졌다. 그리고, 그렇게 햇살이 따뜻했던 봄날 기다리던 나의 봄 손님, 혁수가 드.디.어 제주에 찾아왔다. 기다리던 손님은 오지도 않고 타인의 방문이 더 많았던 그쯤, 커다란 가방을 들고 혁수가 제주도에 도착했다. 우리는 그간의 세월은 아랑곳없이 바로 오일장으로 나가 장터에서 꼼장어와 한라산 소주를 마시며 길고 긴, 또는 짧디 짧은 서로의 삶을 이야기한다.
돈도 없고, 가난했던 이십대 시절 우리는 어느 시민단체 모임에서 만났다. 당시 사회적인 열정만큼은 같아서 우리는 열심히 또는 치열하게 그 시절을 보냈다. 이런저런 활동이 끝나고 저녁이 돌아오면 술은 막 마시고 싶은데 돈은 없어서 우리는 서로의 주머니를 털어 구멍가게에서 싸구려 양주 캡틴큐를 사서 자주 마셨다. 그게 벌써 17년 전 일이다. 혁수는 아르바이트로 쥐꼬리만한 월급을 받는 날에는 통 크게도 노량진 수산 시장에 데려가 회를 사주기도 했다. 강원도에서 혁수 어머니가 택배로 보내 주셨던 가자미식해가 오는 날에는 혁수의 단칸방에서 삼삼오오 모여 싸구려 양주였지만 우리는 멋들어지게 폼을 잡고 술을 마셨다. 영화음악을 자주 듣고 영화 이야기를 자주 하기도 했던 그 시절. 비 내리는 밤, 혁수의 PC속 음악을 틀어두고 우리는 밤새 떠들어댔다.
그렇게 내 이십대를 함께 보낸 내 친구를 뒤로하고 나는 삼십이 되면서 여행을 떠났다. 이후로 애써 이 비현실적인 사회적인 문제들을 외면하며 외국으로 오랜 시간 떠나가 살았다. 우리가 나름 열심히 활동하며 기대했던 그 세상은 많이 변할거라 기대했지만 실은 어쩌면 무엇도 변하지 않았다. 우리는 나름 이십대의 시민 단체 활동 시절을 성공했다 생각했지만 결론은 절망적이었기에 나는 모멸찬 사회를 조롱했다. 나는 많이 지쳐버렸나보다.
이제는 우린 그 시절과는 다른 나이대가 되었다. 어느새 우리의 나이가 훌쩍, 세월의 흐름을 타고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정치적 사항 말고도 좀 더 다른, 환경적인 문제나 자연을 대하는 자세, 적절한 소비나 무소유의 삶을 이야기 나누며 제주의 하루를 보낸다. 오랜만에 서울이 아닌 제주에서 만난 오랜 친구와의 하루는 참 짧았다. 우리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땐 또 우린 무슨 이야기를 나눌까. 친구가 떠나고 나는 과거를 회상하고 우리의 시절을 떠올렸다. 저 떠오르는 태양처럼 우리는 빛났다. 우리의 시절은 벚꽃처럼 흐드러지게 피었다가 다시 후두둑 떨어졌다가 다시 흐드러지게 피기도 한다. 한 시절 그렇게 자주 만나 서로를 의지하고 술잔을 부딪치던 친구를 내가 제주로 이주한 이 후 이젠 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 바로 엊그제 이십대 시절 만났던 것처럼 행복하고 기쁘다.
이제는 모든 라이프 스타일이 바뀐 나의 이런 저런 제주 이야기를 들려주면, 호기심 어린 눈동자로 신나게 들어주는 육지에서 온 내 친구. 어쩌면 멀리 떨어져있기에 우리의 우정은 더 애틋한 걸까? <너의 제주 생활이 빨리 끝날 줄 알았는데 여전히 잘 살고 있는 너를 보니 나도 제주란 섬에 한번 내려와서 살고 싶어진다.> 는 친구의 말에 나는 그저 참 잘 살고 있구나 싶다. 다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떠나는 친구를 보며 우리의 시절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봄꽃처럼 찾아온 나의 봄꽃시절 나의 봄 손님. 밤새 나눈 이야기 우리 잊지 말고 기억해 또다시 안녕하기를. 나는 우리를 참 사랑해. 내 생의 좋은 친구, 혁수.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연애하듯 여행>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