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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민이야기

이주민이야기 : 소소한 제주 이야기

제주 병 VS 서울 병

제주 병 VS 서울 병

by 라라 여행작가 2019.11.21

차츰 겨울이 다가오면서 해가 더 짧아져 6시만 돼도 마을은 어둠으로 뒤덮인다. 엊그제 올려다 본 밤하늘에는 둥그런 달이 손을 뻗으면 마치 가까이 있는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무 위에 앉아 있었다. 내가 사는 하귀리는 아무래도 공항과 가까워 비행기가 지나는 하늘길이 있어 이따금 야간 비행을 하는 비행기 불빛을 볼 수 있다. 그 옆에 작은 별 하나, 둘, 셋. 제주의 밤은 어둡기 때문에 달도 별도 도시보다 더 빛나고 고요한 정적속에서 존재가치를 명확히 알려준다.
제주의 밤이 고요해서 좋지만, 나는 이따금 도시의 명랑함이 그립기도 하다. 워낙 술을 좋아하는 애주가다 보니 아무래도 일찍 문을 닫는 가게들 속에서 예전처럼 1차, 2차 자리를 옮겨가며 술을 마시기는 쉽지 않다. 일찍 해가 지는 시간만큼 가게에 앉아 마시는 친구와의 술자리는 일찍 끝난다. 아무래도 늦게까지 앉아 술 한 잔 기울이기에는 가게 사장님에게 눈치가 보인다. 제주에 내려오고 자연스럽게 생긴 애주가의 술자리는 그리하여 집이 되었다.
집에서 두부를 지지고 부침개를 부치고, 찌개를 끓이며 편하게 마시는 집 술. 서울에 있는 친구와 전화로 안부를 물으며 나는 그녀가 사는 망원동으로 한 걸음에 달려나가고 싶었다. 서울 살 때 서교동에 살던 난, 그녀와 망원동이나 연남동 서교동에서 만나 종종 술자리를 가졌다. 그러다 기분이 좋으면 2차로 광장시장으로 나가기도 했다. 왁자지껄한 시장의 분위기에 앉아 있으면 기분이 더 명랑해지곤 했다. 친구와 옛날이야기를 나누며 통화를 하다 보니 난 정말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아아 서울 가고 싶다. 난 이럴 때만 꼭 서울 병이 도지는 것 같아” 그러자 친구가 하는 말이 “나는 제주 바다도 보고 싶고, 숲길도 걷고 싶고, 너처럼 텃밭도 가꾸고 싶은데 난 매일 매일이 제주 병에 걸려서 어떡하면 제주 가서 살 수 있을지 궁리인데 우린 반대가 되었네? 하하” 전화기 너머 우린 서로가 반대로 병이 나 안달 난 우리 모습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제주가 좋지, 왜 싫겠어. 그러니 이렇게 7년이나 살고 있잖아. 하지만 도시 살 때처럼 언제든 전화 한통이면 자주 모였던 술자리가 그리울때면 난 순간이동하듯 서울로 가고 싶더라. 그 거리가, 그 분위기가 이따금 그리워. 많은 사람들 틈에서 어깨를 부딪히며 거리를 걷고 이 집과 저 집을 넘나들며 애주가가 술잔을 부딪히던 시간은 이젠 추억이 되었나 봐. 고요의 적막이 나쁘지는 않은데 지난 시간들을 떠올리면 따뜻하게 느껴져. 만약 이곳을 떠나 도시의 시간이 길어지면 난 거꾸로 지금의 이 시간을 그리워하겠지. 다시 제주 병에 걸려서 모든 걸 그리워할 거란 걸 알아.”
제주의 내 시간도 한 해 두해 흘러서 차곡차곡 쌓여 생을 만들어가고 있다. 우리가 선택해서 시작한 이 제주의 시간들이 마치 못 잊을 여행을 하고 온 것처럼 지금도 행복하게 빛나고 있다.
​전화기 속의 친구가 날 잡아 서울에 한번 다녀가라고 한다. 서울 병에 걸린 제주 친구와 제주 병에 걸린 서울 친구는 아무래도 어딘가에서 만나 술잔을 부딪쳐야겠다.

여행작가, 라라
(애월에서 소규모숙소<달빛창가302호>를 운영, 여행서 <연애하듯 여행>저자)